삼성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 회계처리 방식 변경과 관련, 금융감독원ㆍ공정거래위원회에 이어 회계연구원도 적정성 여부에 대한 결정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논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회계연구원은 지난 5월23일 참여연대가 금감원ㆍ회계연구원 등에 “삼성생명 지분을 원가법으로 적용한다는 에버랜드의 회계처리 방침이 적정한가”라고 공개 질의한 데 대해 3일 참여연대에 최종회신을 보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회신에 따르면 회계연구원은 “기업회계기준서 제15호의 ‘지분법’ 문단 6에 따라 사실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으나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는 회계연구원의 해석에 기대지 말고 이해 관계자들끼리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적정성 여부에 대한 결정을 포기했음을 시인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원으로서는 더 이상의 해석이나 답변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는 지난달 16일 1ㆍ4분기 보고서를 통해 삼성생명 지분 19.34%에 그간 적용해오던 지분법 대신 원가법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자회사 실적에 따라 지분가치가 늘어나는 지분법 대신 원가법으로 바꾸면 지분가치가 고정된다. 이에 따라 에버랜드는 ‘총자산 중 금융계열사 지분가치 50% 이상’인 금융지주회사 규제기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새로 적용되는 회계기준서에는 지분율이 20% 미만이라도 재무ㆍ영업정책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지분법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삼성의 회계처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참여연대의 주장대로 원가법이 아니라 지분법이 수용되면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되면서 삼성중공업 등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전부 매각해야만 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큰 타격이 된다.
그동안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금감원과 금융지주회사법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삼성의 회계처리 방식에 대한 적정성 판단을 회계연구원에 떠넘기면서 “연구원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날 회계연구원마저 최종적으로 적정성 여부 결정을 포기함에 따라 모든 관계부처가 에버랜드 지주회사 문제 처리에 손을 놓은 형국이 됐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도 “회계연구원의 답변을 기다린 우리도 골치 아프지만 당장 어쩔 방도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참여연대는 연구원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입장과 함께 “모든 문제를 고려해 새로운 대응방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