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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중반의 박정남(가명)씨는 최근 잦은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몸의 이상신호를 느꼈다. 가슴이 화끈거리는 불쾌한 통증과 함께 목과 가슴 사이에 복숭아씨가 걸려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져 심장 검사를 해봤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위액이 역류하는 경우에도 가슴의 답답함과 속쓰림, 신트림, 목에 이물질이 걸린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역류성 식도염은 위 속에 있어야 할 위산 또는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는 현상이 지속돼 식도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성인 10명 가운데 1명이 역류성 식도염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류성 식도염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역류성 식도염이 자주 반복되면 식도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조기발견과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역류성 식도염은 위와 식도 사이에 있는 하부식도괄약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로 발생한다. 괄약근은 특정 기관의 개폐에 관계하는 일종의 밸브 역할을 하는 고리 모양의 근육으로 이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특정 장기에 보관된 물질이 역류하거나 다른 곳으로 새어나오게 된다. 마치 댐에 있는 수문이 고장 나면 물이 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식도괄약근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을 먹거나 트림을 할 때만 열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 괄약근의 조이는 힘이 느슨해지거나 꼭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자주 열리면 위 속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게 되고 역류한 위산이 식도 점막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게 된다.
식도괄약근을 약하게 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도 동물성 지방이 가득한 고지방식과 알코올 등은 식도괄약근을 느슨하게 하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흡연과 커피·탄산음료 역시 마찬가지다.
역류성 식도염은 괄약근 이상뿐만 아니라 위산 과다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역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식이나 폭식을 하면 위 속 내용물의 양이 늘어나 위산 분비가 증가될 뿐만 아니라 음식물이 위에서 장으로 배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식도로 역류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셈이다. 알코올이나 커피 역시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위액의 양 증가는 바로 위액 속 위산의 증가로 이어져 역류를 유발한다.
또 음식을 먹고 바로 눕거나 구부린 자세를 취하는 경우에도 위 속의 음식물이 위식도 연결부위까지 올라오면서 위산이 역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식후 바로 눕는 습관이나 취침 전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역류성 식도염을 부르는 셈이다.
위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지는 경우에도 위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로 복부비만이거나 허리띠를 꽉 졸라매는 경우, 속옷이나 바지 등이 꽉 끼는 경우 등에서 복압이 높아진다.
음주와 흡연이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인 만큼 역류성 식도염은 남성 유병률이 더 높다. 소화기내과 전문의들은 남성 유병률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도 안심할 수 없다. 여성의 역류성 식도염 원인 역시 고지방식·음주·비만·카페인 등이지만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꽉 끼는 옷이다. 여성들의 경우 몸에 꽉 끼는 스키니진이나 보정속옷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복부를 압박하게 되고 복압이 높아져 위산이 역류할 가능성이 크다.
마른 여성보다 그렇지 않은 여성일수록 더 주의해야 한다. 살이 찌면 원래 복압이 높은 상태인데 스키니진이나 보정속옷의 압력까지 더해지면 위산 역류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몸매관리에 대한 압박으로 섭취한 음식을 토해내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 역시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토하는 횟수가 잦을수록 위와 식도 사이의 괄약근이 느슨해져 위산이 더 잘 역류하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현상이 계속돼 역류성 식도염이 생기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목에 무언가 걸려 있는 느낌이나 신물 올라옴, 신트림, 속쓰림 등을 호소한다. 가슴이 타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역류성 식도염을 방치하면 다른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위산이 식도를 지나 기도까지 넘어가면 만성 기침이 생기거나 목이 쉴 수 있고 후두염·천식 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식도가 오랜 시간 위산에 노출되면 식도와 위 경계부위에서 식도조직이 위 조직처럼 변하는 배럿식도가 발생할 수 있다. 배럿식도는 식도암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조원영 민병원 치료내시경센터 원장은 "역류성 식도염이 자주 반복되면 식도 점막세포를 변형시키는데 이는 식도암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정기검진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평소 위장에 무리를 주는 야식과 음식 섭취 후 바로 눕는 습관을 피하고 과체중인 경우에는 괄약근의 압력이 낮아져 위산 역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는 것이 질병 예방과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홍성수 비에비스나무병원장은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지면 통증 때문에 식사나 수면 등 가장 기본적인 삶의 질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 식도 협착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증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을 방문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시경 검사를 통해서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단되면 위산 분비를 억제하거나 위식도 운동촉진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약물을 끊으면 증상이 재발해 수년 이상 약물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수술을 고려하기도 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식도 협착, 배럿식도 등의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에도 식도 확장술이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을 예방하려면 지나친 음주나 기름진 음식 섭취를 자제하고 탄산음료와 과일주스·커피 등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음료와 맵고 자극적인 음식 또한 피하는 것이 좋다.
식사 후에 바로 눕거나 잠자기 직전 간식을 먹는 것도 금물이다. 이미 증상이 발생한 환자의 경우 가능하면 오른쪽보다 왼쪽 방향으로 눕는 것이 좋다. 위의 구조상 소화되기 전 음식물이 하부식도괄약근에 자극을 덜 주게 돼 위산의 역류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껌을 씹어 타액을 많이 분비시켜 역류한 산을 중화시키는 것도 증상을 완화하는 한 방법이다.
(사진설명) 한 남성이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위한 위 내시경 시술을 받고 있다. 식사 후 가슴과 명치 부근의 타는 듯한 통증과 신물이 올라오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서울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