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이 나랏빚(국채 발행)을 내서라도 예산을 늘리려는 이유는 집권 초반 경기악화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단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경기 부문의 급한 불을 끄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켜온 재정건전성은 박근혜 정부 초반에서는 일단 순위가 밀린 셈이다. 다만 늘어난 복지예산을 일부 메우기 위해 각종 공제를 줄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증세'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예산'으로 100% 지지 확보=박 당선인의 경제통 가운데 경기활성화를 강조해온 측은 가계부채,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청년 일자리 등에 예산을 우선 투입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예산의 1차 수혜자는 대부분 중산층 이하 및 2040세대다. 이들은 사회양극화를 가장 체감하는 동시에 박 당선인의 지지가 낮은 계층이기도 하다. 박 당선인 측 관계자는 "2040세대의 불만을 이해하고 우리가 바꿔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예산 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최근 부동산 취득ㆍ등록세 감면 연장을 이야기한 것도 이 같은 기조에서다. 감면은 정부의 세수 감소를 의미하므로 사실상 예산 투입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새누리당 정책위는 부동산 취득ㆍ등록세 감면 연장법안을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국회 논의 과정서 정부와 1차 충돌=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1일 예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랏빚인 국채 발행 한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국채 발행 한도는 물론 발행을 늘려서 예산을 마련하는 일에 반대를 분명히 했다. 복지를 늘리려면 기존 예산을 줄이라는 주장이다. 박 당선인 측과 이명박 정부의 첫 마찰이 예고되는 셈이다.
그러나 결국은 박 당선인의 뜻에 따라 흘러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3년 예산안에는 국채 발행 한도가 79조9,000억원으로 돼 있고 실제 국채 발행은 79조원으로 엇비슷하다. 결국 박 당선인 측의 주장대로 하려면 최대 89조원 안팎으로 국채 발행 한도를 늘려야 한다. 국회법상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 총칙을 수정하면 가능하다. 새누리당은 21일 재개한 예결특위에서 이를 추진할 방침이다.
◇국채에 추경에…결국 증세 불가피=박 당선인은 최근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은 언제든 쓸 수 있는 카드라고 밝혔다. 지금 당장은 추경 논의가 이르다는 게 박 당선인 측의 기류지만 내년 초반에 다시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내년 세 수입이 줄어든 반면 국회 예산심의에서 감액이 평년보다 저조한 상황에서 추경까지 등장하면 증세로 메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학에서 '증세'로 규정하는 세율 증대가 부담스럽다면 각종 공제를 줄이고 최저한세율을 높이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내에서 특별공제 종합한도를 낮추거나 개인사업소득에도 법인세처럼 최저한세율을 적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 사례다. 해당 당사자에게 사실상 증세를 예고하는 셈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관계자는 "국채 발행 한도를 6조원가량 늘리는 정도는 현재 경제위기를 감안하면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새 정부는 내년 경제악화를 막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겠다지만 경제악화로 세 수입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더욱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