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법치주의의 상징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이런 점을 높이 사 대선에 동행할 파트너인 중앙선대위원장으로 그를 선택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으로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며 신뢰까지 더했다는 후문이다. 박 당선인이 가장 중시하는 원칙(법치)과 신뢰를 김 위원장이 증명했다는 게 삼세번 발탁의 이유인 셈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신중함이 발탁 이유=김 후보자는 그간 하마평 순서에서 뒷순위에 있었다. 첫 총리로 청백리 법조인을 내세우리라는 예측은 많았지만 이미 선대위와 인수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한 사람을 다시 중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두번이나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가며 오히려 다른 후보자보다 비교우위로 갖게 됐다. 대선 기간 동안 대부분 조용한 행보로 눈에 띄지 않던 그는 인수위 기간 불통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양한 부처에서 올라오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때로는 밀어붙여야 하는 총리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책임총리제는 총리의 권한이 높아지는데 (당선인)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사람한테는 넘길 수 없는 것"이라면서 "차라리 본인과 계속 호흡을 맞춰왔고 국정철학이 맞는 사람에게 권한을 넘기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을 통하지 않고 박 당선인이 발표한 형식은 김 후보자에 대한 힘 실어주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 당선인은 당선 이후 처음으로 직접 인선 발표에 나섰다. 서울 중구 삼청동에 있는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도 24일이 첫 방문이었다. 박 당선인은 발표 후 질의응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 김 후보자가 조명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상론' 책임총리제 현실화 가능할까=김 후보자의 첫번째 과제는 책임총리제 구현이다. 박 당선인은 총리와 인사 등 주요 권한을 나누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저마다 책임총리제를 공약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를 경우 청와대 참모진 등 측근 인사들과 내부갈등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청와대 참모진은 "아무리 청와대 규모를 줄이고 책임총리ㆍ책임장관제를 말해도 매일 대통령과 대화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습관 역시 책임총리제가 안착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과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실제로 정부가 출범을 하면 나눌 수 없는 본질을 갖고 있어서 권력은 센 쪽으로 모이게 돼 있다"면서 "실제로 과연 책임총리제, 장관 중심의 부처운영이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총리에게 인사권을 부여한다고 해도 검증작업이 부실해질 경우 오히려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만큼 많은 정보를 갖고 인사를 검증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면서 "총리나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인사를 진행하면 오히려 내부의 신뢰감 상실로 줄대기 인사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능력 의문" 인사청문회 도마 오를 듯=민주당은 김 후보자의 인선이 '무난하다'면서도 능력에 초점을 맞춰 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사이에서 책임총리를 원만히 수행할지가 인사청문회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988년부터 대법관, 1994년부터 헌법재판소장을 지냈지만 당시에는 인사청문회제도가 없어 이번이 첫 무대다.
박용진 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책임총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행정경험과 부처 장악능력이 필요한데 과연 어떤 경험과 능력을 지녔는지 검증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언주 원내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지금까지 소통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면서 "언론의 질문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회피하고 박 당선인의 의중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이었다"면서 "책임총리 자리는 대통령 보좌뿐 아니라 대통령이 잘못했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후보 지명 후 첫 일성으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괄하겠다"고 밝힌 점 때문에 소신 총리보다는 보좌 총리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가 교수는 "총리의 정치적인 역량을 고려하기보다는 대통령의 국정기조와 국정철학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분을 선택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