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이슈] 채용 '탈스펙' 바람…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은

학점보단 직무관련 경험·역사지식 본다


본격적인 채용 시즌이 시작되면서 좁은 문을 뚫기 위한 취업 준비생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SK그룹이 지난 5일 '노(NO) 스펙'을 선언하고 LG와 현대차 등 주요 그룹에서 '탈(脫) 스펙' '인문학 소양 강조' 등 채용 방식 자체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자 취업준비생들로서는 어느 해보다 준비 과정이 복잡해지게 됐다. 옥석을 가려내는 각 기업의 특별한 방식과 이에 따른 지원자의 준비 방법 등을 알아봤다

■ 삼성

학점·어학성적 하한선만 넘기면 돼


삼성그룹은 아예 입사지원서부터 출신 대학과 지역·가족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사항은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지원하는 계열사·직군별로 요구하는 전공 학점(3점 이상)과 공인어학성적만 충족하면 된다.

자기소개서에도 신변에 관한 시시콜콜한 내용보다 직무와 관련한 경험을 얼마나, 어떻게 쌓아왔나를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채용 관련 사이트인 삼성커리어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취업 선배들의 생생한 수기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현대차·LG

글쓰기 실력·역사 소양 갖춰야


국내 제조업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현대차에 입사하고 싶은 지원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은 글쓰기 실력과 역사 지식이다. 최근 대기업들은 이공계 출신을 선호하면서도 균형 잡힌 사고 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뽑기 위해 인문학 소양을 채용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현대차 지원자들은 이번 상반기 공채에서도 280분간의 인적성검사(HMAT) 이후 40분 동안 700자 내외의 역사 에세이 2개를 작성해야 할 만큼 인문학적 통찰을 일목요연한 글쓰기로 풀어내는 능력이 필수다.

상반기 대졸 공채를 진행 중인 LG그룹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특정 직군을 제외하고 사진·외국어점수·자격증·가족관계 입력란을 없앴다. 대신 자기소개서의 비중을 높이고 필기시험에 한국사와 한자 문제를 추가했다.

■포스코

서류전형 후 블라인드 테스트


포스코도 스펙의 비중을 점점 줄이는 대기업 중 하나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학점과 어학 성적은 커트라인만 넘기면 특별히 우대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 공채부터 직무 역량평가와 최종 면접을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류만 통과하면 원점에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면한 사회문제를 역사적 위인의 리더십을 적용해 푸는 방법 등 역사 에세이도 평가 항목에 포함시킬 것"이라며 "직무능력 외에 시사상식과 인문학적 소양도 충실히 쌓아둬야 한다"고 했다.

■롯데

여성·장애인 등 열린 채용 확대


롯데는 여성과 지방 인재, 장애인 등 다양성을 중시하는 열린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성별이나 출신지 등의 배경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특히 롯데는 여성 인력 확대를 위해 앞으로 신입 공채 인원의 40%를 여성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특별 채용을 별도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전역 장교 채용도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화·한진

인적성검사 폐지 면접전형 강화


한화와 대한항공은 자체 개발한 인적성검사를 폐지하고 면접 전형을 강화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한화그룹은 2006년 HAT라는 인적성검사를 활용해 신입사원을 뽑다가 2013년 직무역량 중심의 채용 평가로 전환하며 HAT를 없앴다.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면접과 함께 일주일간의 실습평가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화그룹 인사담당자는 "인문 계열을 전공했지만 갤러리아 백화점에 지원하기 위해 일부러 동대문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얻은 지식을 지원서에 잘 풀어쓴 지원자가 인상적이었다"고 귀띔했다.

대한항공 역시 지난해 하반기 KALSAT이라는 자체 인적성검사를 폐지하고 면접 비중을 높였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단순 객관식 형태의 인적성검사는 생각보다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세 차례에 걸친 심층면접을 통해 서비스 업종에 적합한 인재를 뽑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해외연수·자격증 기입란 없애


금융권도 '스펙 없애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채용부터 금융자격증과 외국어 성적 기입란을 없앴다. 대신 한국사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하고 헌혈 횟수 등을 기입하도록 해 인문학 소양 및 봉사정신 등을 채용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취업준비생들이 필수로 여기고 있는 금융자격증은 입사 이후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업이 서비스업인데 금융자격증과 토익 성적 등을 중시하다 보니 은행원의 기본자질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며 "취업준비생들이 금융자격증 획득에 지나치게 힘을 쏟아붓는 현상이 사회적 낭비라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또한 지난해 하반기 채용에서 해외연수 경험 기재란을 없애고 신입사원의 30%가량을 지방대생으로 뽑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지난해 어학과 금융자격증 기재란을 입사지원서에서 삭제했으며 올해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개발 중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따라 채용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공기업에서 채용 관행을 바꾸면 시중은행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시중은행들의 채용 아이디어 등도 참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