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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열대야가 수그러들었는데도 여전히 잠을 잘 자지 못하고 특히 나이가 들어 눈에 띄게 새벽잠이 줄어든 경우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에 뭔가 기어간다거나 저린 듯한 이상한 느낌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려운 증상이다. 디스크나 하지정맥류 등으로 오인해 치료하거나 꾀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본인에게는 극단적으로 자살을 생각할 만큼 끔찍한 병이다. 특히 더울 때나 날씨가 궂어 저기압일 때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불면증 일으키는 하지불안증후군=주부 이모(58)씨는 밤에 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자려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종아리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과 불편함이 있어 다리를 가만히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리를 조금 움직이면 일시적으로 괜찮아지는 듯했지만 곧 같은 느낌이 반복됐다. 디스크가 아닌가 싶어서 관련 치료도 하고 폐경 이후 갱년기 증상인지 싶어서 호르몬제도 먹어봤지만 증상은 오히려 심해지기만 했다. 결국 제대로 누워 자지를 못하고 식탁에 기대 서서 잠을 청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씨는 "우연히 하지불안증후군 얘기를 듣고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증상이 훨씬 호전됐다"며 "이제 다리에 이불도 덮고 자고 저녁에 푹 잘 수 있어서 새 삶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적인 상태에서 사지에 불쾌한 감각이 나타나고 자꾸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 움직여 주면 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고 증상이 낮보다는 주로 밤에 더 심해지는 증상을 하지불안증후군이라고 한다. 저녁이나 밤에 다리가 근질근질하다거나, 뭐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거나, 저리거나, 막연히 불편한 느낌이 들거나, 심지어는 통증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상 감각은 종아리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다리를 털게 만든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살을 긁고, 주무르고, 발을 펴보지만 증상을 다소 줄일 뿐이며 결국 잠에서 깨기 때문에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은 불면증을 함께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하지불안증후군 환자 15%만이 치료 경험=하지불안증후군은 정적인 상태에서 다리에 불편한 느낌이 나타나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거나 회의, 영화관람, 장시간 운전ㆍ여행 등이 어렵다. 때문에 원만한 직장생활이나 대인관계가 어려워지고 우울증 빈도도 높아지며 결국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진다.
정기영 고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5,000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한 연구에 의하면 심각한 수준의 하지불안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7.5%에 달했다"며 "심한 하지불안증후군 환자 중 약 15%만이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고 나머지는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소아에서도 나타나는데 소아에서는 성장통이나 주의력 결핍장애로 오인받기 쉽고 실제로 예전에 성장통이라고 간단히 넘겼던 아이들의 상당수가 소아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받았다는 연구도 있다. 특히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워 부산해지기 때문에 선생님께 자꾸 꾸중을 받아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경우도 생긴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는 다리 마사지, 족욕, 가벼운 운동 등 비약물 치료를 권하고 심한 경우는 약물로 치료한다. 약물 치료의 경우 철분 결핍이 확인되면 철분을 보충해주고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제재를 소량 복용하면 대개 1~2주면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다.
정 교수는"하지불안증후군은 약물로 비교적 치료가 손쉬운 병임에도 의료진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다리를 불편해하거나 밤에 불면증이 생긴다면 증상을 귀 기울여 듣고 하지불안증후군에 해당되는 건 아닌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