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대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자수성가형 창업기업이 19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매출 기준으로 국내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다. 설립 20년 미만의 '청년기업'은 전체의 3분의1쯤 되지만 63%는 대기업집단의 신설·분할회사나 외국계·공기업 등이다. 이번 통계가 아니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대사(代謝)부진 현상은 심각하다. 총자산 100대 그룹 가운데 자수성가형 청년기업군은 미래에셋증권·네이버·셀트리온·인터파크 등 4곳뿐이다. 최근 4년간 중견그룹 가운데 30대그룹에 진입한 곳은 하나도 없다. 포춘지가 1990년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76%가 20년 뒤 탈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업종이 전자·자동차·조선·유화·철강·건설 등에 편중돼 있는 것도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업종은 50개 정도인데 여기에 속한 우리 기업들의 업종은 10개에 불과하다. 대표기업들의 업종도 단순해 동반불황에 빠지면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사업군도 몇 개 업종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의료·환경·에너지·안전·지식·항공 등 신사업군을 늘려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핵심이지만 정부 규제 완화도 긴요하다. 대기업집단 자산기준을 2008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 조정하자 그전 5년간 자산 2조원 이상 5조원 미만 그룹으로 진입한 곳이 하나도 없다가 2009년 이후 13개로 늘어난 게 이를 방증한다. 중소·벤처기업의 다양한 아이디어 사업화를 대기업과 정부가 뒷받침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나가도록 세제 등도 보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