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300억 과거사 소송 잇단 제동

법원 "진실규명 신청 안하면 국가배상 못받아"
개별 소송 대신 피해자 일괄구제 입법화 필요

과거사 소송으로 인해 집행되는 국가배상금이 연간 1,3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법원이 과거사소송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 관련 소송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2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전쟁 당시 국가에 반역하는 일에 가담(부역)한 혐의로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지상목 부장판사)는 '서산·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피해자 이모씨의 유족 8명이 모두 1억2,6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씨가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공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유족들이 이씨의 사망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점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같은 법원 민사합의32부(이인규 부장판사)도 '김포 부역혐의자 희생사건' 피해자들의 유족과 상속인 81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진실규명을 신청해 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의 유족 22명에게만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배상법과 민법에 따르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불법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그러나 그 동안 법원은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진실규명 조사 등의 조치가 있기 전까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소멸시효 주장은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법원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최근 국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이유는 지난달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난달 16일 '진도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의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는지에 따라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달리 보도록 했다.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사건 발생일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국가배상법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과거사 소송에 대한 기준을 대법원이 제시함에 따라 앞으로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법원 안팎에서는 개별적인 민사소송 대신 피해자들의 일괄 구제에 대한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신 대법관도 지난달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고 해도 피해구제를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민사소송 절차로 내모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배상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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