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가 금융기능의 마비에서 비롯됐는데 모든 나라들이 재정정책을 총동원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 조치를 불문하고 있다. 이것이 옳은 처방인지 그 후유증은 얼마나 클 것인지 누구도 정확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근본적인 질문은 재정기능이 금융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미국의 경우에 자동차 3사에 은행들이 돈을 안 빌려주니까 정부가 재정자금을 직접 투입하려고 한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정부가 기업에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것에 가장 반대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왜곡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조선사업에 연불수출금융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그 금리가 일반대출보다 약간 낮다는 이유로 정부 개입을 비난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수없이 시비를 걸었던 것이 바로 유럽연합(EU) 집행부였다.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임금보조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해고를 줄이기 위해 또는 청년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임금의 절반까지도 정부가 지원한다. 노동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각국 간의 공정한 경쟁질서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에 직접 보조하는 것이나 종사자들에게 임금보조를 하는 것이나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부개입이 무한정 허용된다면 미국 같은 강대국만 유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재정적자를 내면서도 국채를 문제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정정책의 한계가 불분명한 게 자본주의 시장원리라면 그동안 재정의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국채 발행규모를 한 푼이라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국회의 기능이나 야당의 역할은 불필요한 것이 됐는가. 글로벌 금융위기 자체가 기본에서 벗어나 빚잔치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투자자가 맡긴 돈의 40배나 불려서 파생상품을 만들어 낸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그 범인 아니었던가. 세계 각국은 이번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기본에서 일탈한 정부의 재정운용과 금융기관들의 신용창출 행위를 기본으로 되돌려 놓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기능의 마비현상을 일시적으로 치유하는 응급조치용 재정지출은 감수하더라도 금융기능의 영역에 재정기능이 무분별하게 빠져드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