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2.3%’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지난해 4ㆍ4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올 2ㆍ4분기 성장률이다. ‘L자형’ ‘U자형’ 회복이란 예상을 깨고 거시경제지표는 가파른 ‘V자형’의 반등을 보이고 있다. 리먼 파산 1년, 한국경제는 위기의 출구(Exit) 앞에 놓여 있다. 경제지표의 빠른 회복과 주가ㆍ환율 등 금융시장의 안정세는 정부나 한국은행 모두에 출구의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미 소극적 의미의 출구 전략을 쓰고 있는 점을 굳이 표현한다면 문고리를 살포시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성태 한은총재는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기준 금리는 당분간 인하보다는 인상 쪽으로 흐름이 잡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하며 출구(금리인상)를 열수 있는 여건은 이미 조성됐음을 시사했다. 시장은 이미 출구로 뛰고 있다. 시장 금리는 연일 상승해 기준금리와의 스프레드(금리격차)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 1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4.37%. 기준금리인 2%와 2.37%포인트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2기 경제팀 출구 앞에 서다=글로벌 금융위기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MB정부 2기 경제팀은 ‘출구’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켜왔다. 출구전략에 대한 언급이 긴축재정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지며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며 2기 경제팀의 스탠스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신중에 신중을 강조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오는 24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단기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미시적 정책조정이나 유동성 회수 등을 통해 출구전략의 실행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시중에 풀었던 외화 공급자금을 이미 다 거둬들였고 환매조건부채권(RP)ㆍ채권시장안정펀드 등으로 풀었던 원화도 회수했다. 버블 현상까지 우려되는 자산시장에는 압박을 가하며 출구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추가 강화를 비롯해 자산 버블에 대해 계속 경고를 가하고 있다. 금리 카드를 쥐고 있는 한은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출구로 뛰는 시장=금융시장은 이미 출구를 향해 부지런히 뛰고 있다. 채권 딜러들 사이에는 기준금리 2%는 이미 의미가 없는 숫자로 취급된다. 한 채권 딜러는 “정부의 금리인상은 이미 예고된 변수”라며 “최근 거래되는 채권은 기준금리를 3%대로 생각하고 거래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기준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스프레드가 0.5~1.0%포인트 정도가 정상적이라고 본다면 최근 2.51%포인트(8월13일)까지 벌어진 스프레드는 이미 시장이 1%포인트의 금리인상은 예상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기업들도 단기적으로 운용하는 기업어음의 비중과 단기채의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회사채 시장은 8월 휴가시즌을 끝내자마자 발행이 늘고 있다. 9월 첫주에 기아자동차ㆍ신세계ㆍLG텔레콤ㆍ태영건설ㆍSK에너지 등이 각각 2,000억~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나 홀로 금리인상은 경제에 독=출구전략의 핵심은 금리인상. 금리의 키를 쥐고 있는 한은은 아직은 중립적이다. 아직은 경기회복을 100% 자신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리인상의 시점이 멀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연례협의에서 밝혔듯이 올해 안에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하겠지만 반드시 기준금리를 현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어쩌면 한은은 이미 금리를 올리고 싶은데 대통령 등 외부에서 이어지는 ‘출구 전략은 이르다’는 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조 속에서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에 대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선제적인 대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장은 “섣부른 금리인상 등 정책판단만 아니라면 더블딥(이중침체)의 가능성은 낮다”며 “하지만 금융지표만큼 실물지표 회복에 속도가 붙어줄지는 회의적인만큼 출구전략의 신중성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