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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쇼크'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공포가 커지면서 국내 은행의 장단기 외자차입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외화조달시장에도 이상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달 말부터 은행의 외화 장기채권 금리가 꿈틀대더니 이번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가산금리 급등세가 현실화하고 있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5년물 해외채권 가산금리(리보 기준)는 5월 말 118bp(1bp=0.01%포인트)에서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해 이날 143bp까지 급등했다. 시중은행의 한 외화자금부 관계자는 "5월 말부터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로 장기 외화차입 금리가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1년 이하 단기 외화조달시장도 중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달러화 품귀 현상까지 겹치며 금리급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버냉키 쇼크, 외화조달시장에도 충격파=버냉키 쇼크가 주가ㆍ채권ㆍ환율 자본시장을 요동치게 한 데 이어 은행 외화조달시장에도 심리적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화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 출구전략에다 유럽의 재정위기 심화, 일본의 아베노믹스 실패 등 3각 파도가 동시에 밀려올 경우 외자가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금융계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같은 우려는 해외금리 상승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리보 기준 94bp까지 내려갔던 우리은행 해외채권(5년물) 가산금리는 4월 북핵 위기를 제외하고는 두자릿수의 보합세를 유지했지만 출구전략 우려가 일기 시작한 5월 말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6월21일 143bp까지 상승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외자차입 금리 상승이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이 사상 최대 양적완화에 따른 미증유의 출구전략을 시사하고 있어 급격한 외자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외화시장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국 등에서 외자유출이 급격히 진행될 경우 제1 타깃은 외환ㆍ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돼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기 쉬운 한국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기물, 중국 긴축까지 겹쳐 이중 악재=1년 이하의 단기 외화조달시장은 미 출구전략 우려에다 올 들어 본격화한 중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달러화 유동성 위축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지금까지 단기 외화조달시장에서 중국의 넘쳐나는 달러화 시장에 의존해왔다. 중국 금융사들이 가산금리를 보태지 않고 리보 수준의 싼값에 단기 외화대출을 해왔는데 올 들어 중국의 금융긴축 정책으로 달러화 공급이 축소되면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1월 13bp에 머물던 단기물(3개월물 기준) 금리는 이후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해 5월에는 37bp로 올랐고 같은 달 21일에는 41bp로 연초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중국 당국의 긴축정책으로 유동성 확보에 치중한 중국 금융사들이 국제시장에서 달러화 풀기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단기 외화조달시장이 막히면서 금융권이 유동성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은행권의 외화 단기차입 비중이 2008년 말 50.1%에서 올 1월 말 18.1%로 낮아지는 등 외화차입 구조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달 외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은행권의 스트레스테스트를 하고 있고 은행들도 위기에 대비한 외화 유동성 자산을 늘리고 있어 2008년의 위기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출구전략 공포가 확산되면서 주식ㆍ채권 등 자본시장에서의 급격한 외국인 투자 유출과 맞물려 국제자금시장에서도 거래가 얼어붙는 등 동시다발적 파고가 몰아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1월 말 현재 국내 은행권은 단기차입 외화 211억달러를 포함해 총 1,164억달러의 외화 부채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