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서 재고라는 꼬리표가 붙은 새 옷들은 통상 3년이라는 기한 내에 선택 받지 못할 경우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소각장 불길 속으로 던져진다. 이렇게 순식간에 한줌 재로 바뀌는 옷은 연간 40억원어치.
그러나 리사이클링 브랜드'래코드(RE;CODE)'에서는 이들이 다시 생명을 얻는다. 수많은 천조각에 새 숨을 불어넣어주는 래코드는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소비를 제안하며 지난해 등장한 코오롱FnC의 브랜드다. 독립 디자이너들이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소각될 뻔했던 옷들을 해체하고 여기에 디자인과 섬세한 수공작업을 덧입혀 새 제품으로 내놓는다.
래코드 매장에 멋스럽게 진열된 제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변화를 이끌어낸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군대에서 쓰는 텐트나 낙하산ㆍ군복을 자르고 재봉해 독특한 감성의 밀리터리룩으로 내놓고 남성복 정장 재킷을 기막히게 자르고 붙여 테일러드 팬츠로 감쪽같이 재탄생시킨다. 자동차 에어백은 튼튼하면서 방수 기능이 뛰어난 기능성 백으로 변신한다. 익숙한 모든 것들을 다르게 해석하는 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 이것이 창조경제의 지향점이다.
제일모직의 남성복 '준지(JUUN.J)'는 창조적인 디자인과 도전정신으로 브랜드 존재를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지난 2007년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준지를 탄생시키고 프랑스 파리컬렉션에 처음 진출한 정욱준 제일모직 상무는 이제 에르메스ㆍ루이비통 등과 함께 파리의상조합의 정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인정받는 디자이너다. 벌써 이번이 13번째인 6월 말 파리컬렉션에서도 준지는 "간결하지만 파격적"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정 상무는 "준지는 브랜드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세계적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절반은 더 남았다"고 자평하면서 "패션산업에서 독창성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튀는 생각과 신기술에만 몰두해 기본적인 경영전략을 놓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합리적인 경영전략으로 성공에 접근한 '드민(DEMIN)'은 독창성과 경영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사례다. 드민은 부띠크 중심의 유통 대신 홈쇼핑(CJ오쇼핑)과 손잡고 론칭 8개월 만인 5월 홍콩 최대 패션그룹인 'I.T'의 매장에 입점한 장민영 디자이너의 브랜드다. 장 디자이너는 "누가 만들어놓은 룰을 따라가기보다 대중이 사랑하는 의상을 선보이고 평가 받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관행보다는 실험을 선택한 결과 론칭 1년도 채 되지 않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로 성공적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문화콘텐츠산업은 창조경제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드라마·음악·게임 등 이미 한류를 발판으로 삼은 콘텐츠산업은 패션ㆍ화장품ㆍ식품 등 관련 산업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창조경제를 만개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노혜령 CJ그룹 홍보기획 상무는 "문화산업을 통해 형성되는 한국에 대한 호감은 우리 제품과 브랜드 호감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종 재화나 서비스의 해외진출을 용이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회간접자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3일 미국 LA 얼바인에서 처음 열린 CJ E&M의 한류 페스티벌 'K-Con(Korea Converntion)'은 K팝 콘서트에 K푸드ㆍK영화ㆍK패션ㆍK뷰티 등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 융합을 통해 한류 산업의 신모델을 제시했다. 포미닛ㆍ지나 등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주축으로 CJ푸드빌 '비비고'의 비빔밥 시연ㆍ시식회, K팝 스타 패션ㆍ뷰티 따라잡기, 스타 코스프레 경연대회, K팝 댄스 배우기 등 30여개 이벤트로 고객 1만여명의 발길을 모으며 뜨거운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다. 고객 가운데 한국인은 7%에 불과했을 정도로 현지 외국인 소비자들에게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비빔밥 코너에 인원 초과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200명이 줄을 섰으며 '써니' '아이엠' 등 한국 영화를 상영한 CGV관은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이 행사는 성공적이라는 평가 속에 올해는 8월 말 LA 다운타운 메모리얼 스포츠 아레나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2004년 겨울 어느 허름한 홍대 앞 만화방에서는 10년 뒤 한국 영화산업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글로벌 블록버스터의 씨앗이 잉태됐다. 장마르크 로셰트의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보고 큰 영감을 얻은 봉준호 감독은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하고 6년간의 기획기간을 거쳐 2010년 CJ E&M과 본격적인 영화제작에 들어갔다. 4년간의 진통 끝에 설국열차는 기존 한국 영화 제작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적으로 제작부터 완성, 배급까지 완벽하게 할리우드 스타들로 현지화해 한국 영화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창현 CJ E&M 영화 부문 홍보팀장은 "지금까지는 한국 시스템으로 제작된 한국 영화를 수출하다 보니 할리우드 문화나 시스템을 온전히 담지 못해 마케팅 등에 제한이 있었지만 완벽한 현지화를 통해 새 시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순제작비만 약 447억원이 소요된 설국열차는 10여분의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 전세계 167개국에 선판매돼 지난해 한국 영화 전체 수출액에 달하는 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제작비의 25%를 중국 자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영화 '미스터 고'는 '어설픈 고릴라'를 '리얼 고릴라'로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첨단 3D기술을 접목시킨 창조경제의 주인공이다. 당초 주인공 고릴라를 영화 '반지의 제왕''아바타'를 만든 '웨타'로 보내려 했지만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다. 김용화 감독은 고심 끝에 사재를 털어 시각효과 스튜디오 '덱스터필름'을 차렸고 낮과 밤, 실내와 실외, 습도, 온도에 따라 고릴라의 몸을 뒤덮은 80만개의 털이 각 상황에 맞춰 제각각 다른 모습과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데 성공했다. 제작사인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과거같으면 고릴라 링링을 만들 때 해외에서 CG 프로그램을 사와야 했지만 이제는 역으로 해외에서 우리 기술을 사가도록 하는 구조를 만든 셈"이라며 "첨단기술을 통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신시장도 개척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