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대기업 계열사 아닌것이 죄”/당국에 투자금 전액 보장책 마련촉구/재경원 “은행·종금보다 파급효과 적다”○…지난 63년 증권파동이후 최초로 증권사 예탁금 인출중단및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고려증권 주식에 대한 증권거래소의 업무정지처분이 내려진 5일 하오1시께부터 고려증권 전 영업점에는 예탁금을 찾으려는 투자자들이 대거몰려들어 맡긴 돈을 인출하는 바람에 예탁금인출이 중단됐다. 이날 하오 예탁금인출을 요구하는 투자자들로 인해 각 지점에서는 정상적인 업무가 이뤄지지 않았다. 고려증권 관계자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주권거래정지 처분은 사실상 고객 신용도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설마하던 고객들이 이날 하오 일시에 몰려들어 자금난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고려증권은 이미 지난 3일 상오부터 고객들의 인출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하룻짜리 콜자금을 조달하려 했으나 은행의 거부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 3일 하오부터 고려증권이 예탁금지불을 일부 중단했다는 소문이 확산됐고 일부 고객들은 거액의 예탁금을 미리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IMF시대 이후 증권사로는 처음 고려증권이 업무정지를 당함에 따라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고객예탁금 이동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우그룹 계열 대우증권의 경우 IMF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인 지난 3일까지도 고객예탁금이 하루평균 10억∼1백억원 가량 인출됐으나 지난 4일 6백13억원이 유입됐으며 이날도 1천억원 가량의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LG그룹 계열 LG증권 역시 지난 3일까지 10억∼40억원 가량 투자자금이 인출됐으나 4일 4백77억원, 5일 7백억∼8백억원 가량의 자금이 집중 유입되기 시작했다.
반면 자금사정이 급속히 경색되는 것으로 알려진 일부 증권사에는 고객들의 투자자금 인출 사태가 속출하고 있어 IMF시대 이후 우량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업계 판도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영업정지 명령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고려증권 직원들은 이제 딴 직업을 알아봐야겠다고 허탈한 분위기. 고려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탐방을 다닐 때 이런기업은 위험하다, 부도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분석한 적은 있지만 정작 당해보니 앞길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K대리는 『회사의 직접적인 실책보다는 계열사인 고려종금의 부실을 떠안는 바람에 부도로 몰린 것같다』며 자체 판단을 내린 후 『기업내용이 좋지않은 종금사·증권사도 있는데 단지 대그룹 계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힘없이 몰린 것 같다』며 하소연하기도.
○…고려증권이 영업정지상황에 처한 것을 보는 증권업계는 침통한 분위기.
S증권임원은 『자본시장개방이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출범 등으로 증권업계가 변해야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면서도 『고려증권 사태가 불거지니 남의일 같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객들의 동요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예탁자의 피해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권거래소는 회원 증권사가 파산사태로까지 몰린 것에 대해 좀처럼 믿고 싶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증권거래소는 특히 이날 후장부터 회원사인 고려증권의 주식거래를 정지시킨 후 가급적이면 본사 매각등 자구노력이 주효해 파산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기대했으나 결국 희망이 물거품으로 끝난 것에 대해 허탈해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증권사가 쓰러진 것은 지난 63년 증권주 파동이후 34년만에 처음』이라며 『증권업계로서는 고려증권이 IMF시대의 첫 희생물이 됐다는 의미뿐 아니라 향후 중견 중소증권사들에 대한 악영향등도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재정경제원은 5일 고려증권의 부도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한듯 이날 하오부터 영업정지 및 고객보호 방안 마련 등 후속대책에 부심.
재경원이 이처럼 발빠른 대응에 나선 배경은 증권사의 부도는 은행이나 종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원은 그러나 고려증권의 부도가 금융불안 심리를 조장,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예금 인출사태로 이어질 것을 우려, 『모든 금융기관의 원금 및 이자는 3년간 보장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 것을 주문.
한때 재경원일각에서는 금융불안 심리 확산을 우려, 일단 은행을 통해 고려증권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왔으나 ▲경쟁력이 없는 금융기관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IMF의 원칙 ▲자금지원여력이 한계에 달한 은행권의 입장 ▲경영정상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소유주의 태도 등을 복합적으로 감안해 단안을 내렸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