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블루슈머의 결혼 신풍속도 '스몰웨딩'

'억'소리 나는 결혼비용 '똑'소리 나게 준비하죠




남의 눈 의식 않고 스드메 등 생략
신혼여행·내집마련에 비용 투자… 나만의 행복 찾는 예비부부 급증
백화점·호텔·소셜커머스 유통업계, 실속형 '웨딩 패키지' 상품 잇따라


이달 말 결혼을 앞둔 30대 회사원 양모씨는 최근 약혼녀와 함께 친척으로부터 소개 받은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이하 무결추)'라는 곳을 방문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비영리법인)인 무결추에서 그는 결혼준비의 꽃이라 불리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프로그램을 시중의 절반 가격인 150만원에 계약했다. 양씨는 여기서 비용을 줄여 100명의 가족과 지인들만 초대해 1인당 10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시내 호텔에서 여유 있는 웨딩 세리머니를 즐기는 쪽을 선택했다. 이탁인 무결추 본부장은 "2~3년 전만 해도 결혼식 준비에 돈을 절약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무결추를 이용해도 입소문을 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저렴하게 준비할 수 있는 곳을 아는 것이 훌륭한 정보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고 귀띔했다.

올 초 결혼한 최지인(30)씨는 남들이 다 한다는 '스드메'를 아예 생략했다. 예식을 올리기 두 달 전쯤 단골 사진관에서 예비신랑과 멋스러운 흑백사진으로 결혼사진을 대체했다. 최씨는 대신 신혼여행지를 가격대가 비싼 몰디브로 선택하고 숙박장소도 최고급으로 정했다. 무엇을 더하고 뺄지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의 취향이었다.

양씨와 최씨처럼 스마트한 '스몰웨딩족'이 한국의 새로운 결혼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결혼 예식 규모를 줄이고 필요없는 부분을 과감히 생략해 나만의 고급스러운 맞춤 결혼식을 한다거나 신혼여행, 집 마련 등 다른 부분에서 실속을 차리는 실용주의 예비부부들이 주목 받고 있다. 예전 같으면 평생 단 한 번인 결혼이라는 점을 내세워 무리를 해서라도 화려한 웨딩을 추구했다면 장기불황과 높은 집값, 취업난, 불확실한 미래, 소규모 웨딩문화 등의 여파로 스마트웨딩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스몰웨딩족을 시장성이 있는 새로운 소비자 계층인 '블루슈머'로 꼽았을 정도다. 블루슈머 스몰웨딩족은 다수의 만족을 위한 형식을 거부하고 개인의 실질적 만족과 행복을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스몰웨딩족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면서 최근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을 겨냥해 '천만 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젊은이들의 달라진 결혼관을 가감 없이 소개한 이 책은 한정된 자원으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끌어내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예비부부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실속파들이 결혼 신풍속도를 만들어내면서 업체들의 웨딩상품 구성과 마케팅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올봄 웨딩 선물세트로 스몰웨딩족을 겨냥해 10만원대 '오휘 셀라이트닝' 세트를 선보였다. 평균 50만원대 이상의 세트를 구매하는 사례가 많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똑똑한 소비 덕분에 결혼식과 신혼여행에서 화사하게 보일 수 있는 미백에센스나 크림 등 한두 개 제품만 고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전히 초호화 결혼식을 치르는 프리미엄 고객을 위한 고가 상품도 판매되지만 요즘은 실속형 제품이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들이 빈 캐리어 가방을 들고 와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다량 구매하는 경우도 잦아 '비싸면 무조건 좋다'는 소비심리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백화점과 호텔·소셜커머스 등 유통업계에서도 블루슈머 스몰웨딩족을 잡기 위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롯데백화점은 올봄 결혼 시즌을 앞두고 예비부부들을 겨냥해 2월2일~3월2일까지 한 달여 동안 전 점에서 '가구 공동구매'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백화점 측은 혼수 3대 가구로 불리는 침대·소파·식탁 등 세 가지 품목을 미리 정하고 전 점에서 예약 신청을 받은 다음 모인 인원에 따라 최대 3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약 600명의 고객이 참여한 가운데 70%가 신혼부부였으며 2개 품목 이상 공동구매에 참여한 고객도 30%에 달했다. 고객들의 높은 호응에 따라 롯데백화점은 다양한 아이템에 대한 공동구매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호화결혼의 대명사였던 호텔에서도 소규모 웨딩이 느는 추세다. 롯데호텔서울의 경우 독특한 콘셉트에 가격대도 실속 있는 소규모 웨딩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늘면서 지난해에는 소규모 웨딩이 전년보다 15%나 성장해 전체 웨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이르렀다. 이 같은 트렌드를 겨냥해 롯데호텔서울이 얼마 전 선보인 '스마트웨딩 패키지'는 40~100명에 한해 정통 프렌치 메뉴로 구성된 식사와 와인, 꽃장식, 웨딩케이크, 샴페인, 결혼식 당일 호텔 객실 무료이용, 조식 2인 서비스, 웨딩 메뉴 2인 무료시식을 모두 포함한 가격을 1인당 10만원(세금 봉사료 포함)으로 맞췄다. 르네상스서울호텔은 유니버셜홀에서 100~200명의 웨딩을 예약하는 고객에게 훈제연어, 브로컬리 크림수프, 안심 스테이크 등으로 구성된 6코스 양식 메뉴를 기존보다 싼 5만5,000원에 제공한다.

허니문을 선택할 때도 오프라인 여행사보다 가격거품을 뺀 소셜커머스를 이용하는 예비부부들이 많이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허니문 패키지는 일반 여행상품보다 20~30%가량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경우 지난해 허니문 상품판매 건수가 전년보다 215%, 판매액은 250%가량 증가했다. 이로써 쿠팡은 1월 해외여행 상품 카테고리 내에 '허니문' 카테고리를 별도로 신설해 신혼여행지로 주목 받는 몰디브·모리셔스·세이셸 등 인기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혼수용품 트렌드도 실속파들이 찾는 자연주의와 실용주의로 흐르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르쿠르제·죠셉죠셉·드롱기 등 한 가지 색깔에 모던한 스타일의 주방용품 브랜드의 올 1월부터 3월2일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21.5% 증가했다. 주방식기를 한번에 대량 세트로 구매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구매하려는 실속형 구매 트렌드에 따라 2~3인 식기세트 판매량도 19.7% 늘었다. 가전용품 구매도 실속 트렌드가 확산돼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캡슐커피머신은 요즘 기본 혼수품목이며 김치냉장고를 별도로 구매하지 않는 대신 최대 사이즈의 냉장고를 선호한다는 게 현대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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