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을 걷는 전신주 제조업을 물려받은 가업승계 2세가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150억원이 넘는 기술개발 투자에 나선 끝에 혁신제품인 대리석 돌기둥으로 미국 시장을 뚫는 데 성공했다.
콘크리트 가로시설물 제조업체인 원기업의 원부성(60·사진) 회장은 11일 기자와 만나 "일본의 원천 기술에 진화된 기술력을 더해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디자인폴'이 지난해 일본에 역수출한 데 이어 이번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대리석 돌기둥(Marble pole)으로 불리는 디자인폴은 콘크리트에 천연석을 혼합, 연마 가공해 만든다.
원 회장은 "미국으로의 첫 수출 물량은 15만 달러(약 1억5,300만원) 규모로, 해외 수출의 경우 해상 운임료가 만만치 않게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현지에서 '디자인폴'의 상품성과 시장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수출 물량 30톤(디자인폴 44주)의 운임료는 1,000만원 수준이지만, 디자인폴의 마진율은 운임 부담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원기업의 전신은 원 회장의 부친인 고(故) 원용선 회장이 세운 삼원기업. 국내 최초로 콘크리트 전주를 만든 회사다. 고 원 회장이 콘크리트 전주사업에 투신한 이유는 나무 전주를 만들기 위한 벌목으로 국토가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원 회장은 "선친의 도전정신이 '콘크리트에 디자인을 입힌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져 친환경 차세대 가로시설물인 '디자인폴'을 개발하게 됐다"고 미소를 지었다. 조국의 환경 보존을 위해 개발한 콘크리트 전주가 반세기 만에 신개념 가로시설물로 변신해 태평양을 건너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원 회장은 사양길로 들어선 콘크리트 전주 사업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그러던 지난 2006년 일본 동경의 오다이바 지역을 가보곤 무릎을 치게 된다. 그는 "콘크리트 사업의 사양화 추세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다가 도쿄 인근 오다이바에 설치된 요시모토폴사의 가로시설물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여겼다"고 회상했다. "철제 구조물의 삭막한 느낌과 달리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고대 그리스 신전의 돌기둥이 연상될 정도로 감동을 받았고 우리 회사가 이 제품을 생산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의 요시모토폴에 삼고초려를 한 끝에 2008년 기술 이전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후 몇년간은 가시밭길이었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주는 전신주 사업과 달리 신제품 개발은 '돈먹는 하마'였다. 매출을 내지 못해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원 회장은 골프 회원권 등 돈 되는 자산을 팔며 뚝심있게 밀어 부쳤다. 가장 핵심적인 연마 기술을 위해 초정밀 자동제어 시스템 개발에 10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투입했다. 그렇게 쏟아부은 돈이 150억원 이상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원 회장은 결국 제조 원가를 요시모토폴사 제품의 4분의1 수준인 300만원 대로 낮추는데 성공한다.
뛰어난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자 기술전수를 해준 요시모토폴이 먼저 독점 협력 관계를 제안했다. 원기업은 2020년 동경올림픽 시설물 공사를 맡은 요시모토폴에 디자인폴을 공급할 예정이다. 원 회장은 "요시모토폴의 기술 이전 기간이 오는 7월로 끝나면 그동안 지급했던 로열티(매출액의 5%)를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이익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400억원 매출과 40억원 규모의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고 예상했다.
오랜 고생 끝에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오른 만큼 소중한 결실을 직원들과 공유하겠다는 게 원 회장의 굳은 결심이다. 그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준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한동안 급여를 올려주지 못했던 만큼 이번 기회에 두자릿수 인상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