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은 없다고 했다. 경험한 적이 없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일 게다. 사람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이 다 다른데 이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사는 사람 모두가 아우성이다. 가격이 계속 뛰니 공인중개업소에 미리 가계약금을 주고 전세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매물이 나온 지 1시간도 안 돼 계약이 이뤄지는 사례도 다반사다. 수백여 가구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전세매물이 단지 1~2개뿐이어서 따져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다는 사람 얘기도 들린다.
이런 악순환에 돈 없는 사람은 더 싼 전셋집을 찾아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전세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친서민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무색하게 됐다.
불명확한 서민 기준
하지만 이들이 다 서민인가. 이 말에 대한 사전적 용어조차 모호하기는 하지만 이들 중에는 강남에서 전용면적84㎡에 7억~8억 원 하는 전세를 사는 사람도 있고, 외곽의 큰 내 집 놔두고 강남과 같은 좋은 교육환경이 있는 곳에서 굳이 셋방살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도 전셋값이 올라서 못살겠다고 한다.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서초구ㆍ강남구ㆍ송파구 등의 순이다. 서초구는 반포 자이의 전세계약이 2년을 넘기면서 가격이 급등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년 전 새 아파트 입주 초기 전용면적 85㎡짜리 전셋값이 3억9,000만원까지 나왔던 것이 지금은 7억5,000만원 안팎이다. 인근의 래미안퍼스티지가 오는 7월 입주 2년차를 맞게 되면 이 곳 전셋값도 한번 더 뛸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내 요지인데다 교육환경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강남구ㆍ송파구 등도 비슷한 조건이다. 다는 아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 중 상당수는 전셋값으로 강북이나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를 살 수 있다.
굳이 이런 곳을 거론한 이유는 지금 서민의 기준과 분류가 애매모호해 논쟁이 벌어지고 정책도 표류하기 때문이다. 전셋값 급등에 서민의 등골이 휜다고 얘기하면서 이런 급등지역을 표본으로 삼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불명확한 서민 기준 때문에 정부정책도 오류가 적지 않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일반공급에는 소득과 자산기준이 없고 은행에 몇 억원이 있어도 아무 상관없다. 청약저축 가입기간만 길면 된다. 단지 전세 살면 서민이라는 식이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생애 최초 및 신혼부부 특별공급에만 적용해온 소득 및 자산기준을 특별공급 전체와 전용 60㎡이하 일반공급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정책도 오락가락
하지만 소득기준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3인 389만9,000원 이하)이면 되고 부동산은 토지ㆍ건물을 합쳐 2억1,550만원 이하, 자동차는 현재 가치로 2,635만원 이하면 된다. 단순히 집만 없으면 연 4,670만여원을 벌면서 2억원짜리 땅이 있고 그랜저급 이상의 대형 중고차를 갖고 있어도 자격이 된다는 얘기다. 그것도 중대형이 아닌 소형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다. 무주택 서민을 규정하는 기준이 너무 헐겁다.
자발적 전세와 어쩔 수 없는 전세, 진짜 서민과 스스로만 서민이라고 느끼는 중산층, 이런 헷갈리는 요소가 구분 없이 전세난과 서민문제로 표출되면서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있는 서민들의 애환이 묻히고 정책도 흔들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서민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분배고 복지다. 그렇지 않으면 친서민정책은 단지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