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꿈쩍 않던 큰손 100억 들고와 '주식 사달라'

■ 달아오르는 증시… 객장은 지금
대부분이 50~60대 이상 중장년층… 신규 상담차 지점 찾는 고객 부쩍
인력 달려 창구직원 점심 놓치기도

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0.39% 오른 2,119.96으로 마감한 15일 주식투자자들이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객장에 마련된 전광판을 통해 주식시황을 확인하고 주문을 내고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연일 상승하며 증권사 발길을 끊었던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각 증권사 지점들이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호재기자



"지금이 투자 기회" 휴면계좌 살리고… 신규개설하고… 개미들 북적

"큰 손해로 주식 끊었는데 시장 살아난다해서…"

4월 들어 활동계좌 매일 1만5000여개 급증

"오르는것만 올라 지켜보자" 신중한 투자자도


"지난 5년간 아무리 좋은 상품을 제안해도 꿈쩍 않던 큰손 고객이 어제 100억원을 가지고 와 중국 주식에 15억원, 국내 주식에 85억원을 투자해달라고 했어요." (A증권 서울 강남 지역 지점장)

코스피지수가 연일 상승세를 타자 주식시장을 쳐다보지 않았던 뭉칫돈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4년간의 박스권 상단(코스피 2,100)이 뚫리면서 투자심리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증권사 지점을 찾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50~6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거의 대부분이다. 개인투자자들이 대부분 거래를 온라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세 가격 상승, 교육비 부담 등으로 40대 이하의 경우 투자할 만한 자산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5일 서울경제신문이 찾아간 서울 여의도와 강남 일대 증권사 지점들은 중년의 개인투자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날 낮 신한금융투자 여의도 지점에는 9개 상담창구 중 6개 자리에 고객들이 앉아 있었다. 박세현 신한금융투자 여의도 영업부 프라이빗뱅커(PB) 팀장은 "신규 상담을 받기 위해 지점을 찾는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며 "점심시간에는 찾는 사람이 많아 상담창구 인력이 당번을 정해 식사를 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도 코스피지수는 장중 2,122.72까지 치솟으며 2,119.96을 기록했다. 2,100선 돌파에 대한 피로감은 지수에서도, 객장 분위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영미 NH투자증권 강남대로 WMC PB팀장도 "모든 직원이 상담문의 전화를 동시에 받을 정도로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요즘 같아서는 증권맨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럽다. 직원들의 사기도 지수처럼 연일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수가 국내 펀더멘털 대비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현재 증시는 국내만 한정해서 볼 게 아니라 글로벌 증시와 경기까지 고려해 봐야 한다"며 "5년 동안 움직이지 않던 투자자가 2,100선을 돌파한 지난 14일 고액을 들고 찾아온 것을 보면 아직 과열양상이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반박했다.

15일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NH투자증권 강남대로 WM센터를 찾은 김모(72세)씨는 객장에 비치된 단말기를 통해 증권주들의 현재 가격과 주문번호를 종이에 하나씩 적어 나갔다. 오랜만에 찾은 객장이 어색한 듯 보였다. 그의 투자 경력은 30년에 가깝다. 지난 1988년 올림픽을 시작으로 다음해 4월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를 찍을 당시 주식 투자에 처음 나섰다

1990년 걸프전 발발로 주가가 폭락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은 아예 주식거래를 하지 않았다.

김씨는 "젊은 사람이야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주식매매를 바로 하면 되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쫓아갈 수가 없어 객장에 나왔다"며 "어제 증권주가 빠졌다고 하길래 지수상승 시 가장 수혜를 입을 증권주에 장기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몇 년 동안 시장을 외면했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날 을지로 유안타증권 본점 영업부를 찾은 직장인 곽모(46세)씨도 "현재 5,000만원 정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며 "2,200~2,300선까지는 오를 것으로 생각돼 지금이 투자할 기회인 것 같아 지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대치지점에서는 지난해부터 아예 사용을 중단한 마그네틱(MS) 증권카드를 들고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도 있었다. MS카드의 경우 2013년 2월부터 순차적으로 자동화기기 사용이 차단됐고 2014년 2월부터 전면 차단됐던 점을 감안하면 최소 2년 이상 거래를 하지 않던 투자자인 셈이다.

이 지점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 들어 신규계좌 개설 및 휴면계좌를 활성화하는 비율이 40~50% 정도 늘어났다.

오프라인 지점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달아오르는 증시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증권사인 키움증권의 경우 올해 4월 일평균 약정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4.61% 증가했고 약정의 선행지표로 쓰이는 일평균 신규계좌개설 수 역시 전년 동월 대비 137.89% 증가했다.

실제 주식거래활동계좌 수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1,995만8,151개 수준에 그쳤던 주식거래활동계좌 수가 4월(14일 기준)에는 2,055만1,049개로 늘어났다.

금투협 관계자는 "주식거래활동계좌 수 증가분은 대부분 신규계좌 개설에 따른 것"이라며 "4월 들어서는 매일 1만개에서 1만5,000개의 활동계좌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 예탁금도 지난해 말 16조원에서 4월 현재 2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경기가 나쁜데 유동성만으로 시장이 지속될 수 없어 몇 달간의 반짝 장세로 끝날 수 있다는 경계감도 여전했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사용법을 알기 위해 객장을 찾은 한 60대 투자자는 "다들 시장이 좋다고 하는데 오르는 것만 오르고 있다"며 "현재 정국도 불안해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기존 금액 범위에서 투자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처를 방문하는 길에 잠시 증권사 지점에 들렀다는 40대 고객은 "은행 금리가 너무 낮아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금리를 문의하기 위해 지점을 방문했는데 CMA 금리도 너무 낮아져서 고민"이라며 "금리가 낮아 주식시장으로 가는 것이 맞는 거 같지만 아직까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투자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며 객장을 서둘러 떠났다.

반면 한 증권사 직원은 "일반 투자자들보다 한 발 빠른 고액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들어오고 있어 증시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직원끼리도 아직 주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 고객들이 객장을 찾지 않는 것을 보면 현재 상승장이 끝물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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