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증시 강한경제] “부동자금, 증시로 물꼬 틀어야“
입력 2003.08.17 00:00:00
수정
2003.08.17 00:00:00
“투자자들은 주식을 투기가 아닌 투자수단으로 자리매김 해야 하며, 기관은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해야 하고, 기업들은 더욱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증시 환경이 개선되면, 2만달러 시대로 가는 과정에서 종합주가지수가 2,000포인트는 물론 3,000포인트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기획시리즈 `강한 증시 강한 경제`를 마무리하면서 마련한 전문가 좌담에서 증권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나가야 할 방향과 전망에 이같이 말했다. 전문가 좌담에는 박상용 한국증권연구원장ㆍ오갑수 금융감독원 부원장ㆍ황영기 삼성증권 사장ㆍ김병균 대한투자증권 사장이 참석했다.
▲박상용 증권연구원장=가계 저축이 기업의 투자자금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증권시장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치산업의 비중이 크고 신경제의 비중이 높아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증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은행 차입 만으로는 자금을 조달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증시의 역할과 비중에 아쉬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증권시장이 기업의 직접 금융 창구로서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각 경제 주체들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증시는 중견기업의 설비투자와 새로운 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을 공급해줄 수 있는 체질로 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병균 대한투자증권 사장=현재 우리나라는 자금조달 측면에서 과거의 관행(차입)과 선진국식의 자금조달 방법(직접금융)이 절충된 중간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IMF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들은 설비투자보다는 차입금 상환에 주력했고, 그 결과 지난 96년만 해도 300%대를 보였던 부채비율이 지금은 150%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기업들이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과 투자에 나서야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박 원장=수요측면에서 보면 국내 가계의 자산 포트폴리오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계자산의 85%를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5%는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주식은 금융자산 가운데서도 8% 정도만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가계 주체들이 주식을 저축수단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갑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서면서 개인과 법인에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선진자산운용 수단으로 주식이 부각됐습니다. 현재의 여건을 보면 이자수익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부동산도 급성장기를 지났기 때문에 주식투자가 저축수단으로 꾸준히 부각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성장의 기초가 있어야만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황 사장=지난 89년이후 5년간 주식의 누적수익률은 16%선에 불과하지만, 부동산과 채권은 각각 70%ㆍ56%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주식에 대한 비중을 낮게 가져간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과거 10여년 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변동성도 심하고, 수익률도 저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변동성과 수익률만을 고려할 경우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의 낮은 주식비중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국내기업들이 꾸준히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고, 재무구조도 개선되는 등 질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2만달러 소득시대를 향한 과정에서 주가는 2,000포인트, 3,000포인트까지도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투자자들이 과거의 경험을 잊고 자산운용의 새로운 틀을 짜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오 부원장=투자자들이 주식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게 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주도해 왔습니다. 지난 99년이후 자본시장에서 회계제도의 선진화를 유도했으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외국인들은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김 사장=과거의 주식투자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가 주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이 먼저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하지만 연기금 등 투자여력이 있는 기관이 주식투자에 너무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전체 운용자산의 5.6%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금 관리법 개정 등을 통해 주식 투자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황 사장=지난 2001년 기준으로 한국의 연기금 운용자산 중 주식투자 비중은 7%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65%, 홍콩은 52%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경쟁국인 타이완도 32%선에 달합니다. 이처럼 낮은 주식투자비중은 IMF 구제금융 이전에는 옳은 판단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달라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회계 투명성 등을 감안할 때 지난 97년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정부가 인식을 바꾸는 노력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연기금 주식투자 활성화를 서둘러야 합니다.
▲박 원장=최근 국내외 환경은 과거와 다릅니다. 저금리시대가 본격화되고 있고, 인구의 고령화가 가속화 되는 등 주식중심의 금융시스템 구축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황 사장=흔히 주식시장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꽃이 피려면 좋은 날씨와 비옥한 토양, 튼튼한 뿌리와 줄기가 필요합니다. 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환경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경제여건은 날씨에 해당됩니다. 물론 이들 요소들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비오는 날을 위해 대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정서와 자원, 국가 기간망 등은 증시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에 해당됩니다. 기간 산업망과 정부의 규제, 증권산업의 수준, 개인들의 주식에 대한 인식 등은 뿌리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 부원장=정부 또한 토양에 대한 역할을 높여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제도 개선과 정비에 중점을 뒀습니다. 특히 소액투자자에 대한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우량한 회사가 상장될 수 있는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 등에 대한 정비도 진행중입니다. 증시 진입과 퇴출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기관과 외국인에 편중되는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를 위해 공시제도 보완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대주주 등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을 포함한 회계제도 개선안이 가을에는 발표될 예정입니다.
▲박 원장=우리 증시를 빗대 `냄비`, `천수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관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모든 책임을 기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시장의 저평가 원인으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투자자들의 단타 매매라는 지적마저 일고 있습니다. 단타의 원인은 기업들의 쥐꼬리 배당과 투자자들의 시장과 기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선진국과 같이 연금과 생명보험사 등 계약에 통한 저축 상품들이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오 부원장=기관과 개인 모두가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시장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중입니다. 우리나라 연기금은 자본시장 참여도가 낮지만, 미국의 캘퍼스연금은 미국내 주식에 40%ㆍ해외주식에 18%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연기금 관련법이 개정돼 투자가 확대되면, 배당과 기업들의 현금흐름 등을 고려한 장기투자를 중시하는 등 투자패턴의 변화도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황 사장=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관이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주식시장이 변동성에 비해 수익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기관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연기금이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준다면 다른 기관들도 수익률 확보를 위해 시장에 따라 들어올 것입니다. 노사정 합의를 통해 기업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증시의 버팀목이 될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감시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오 부원장=연기금 등의 증시 투자를 늘리려면, 자산운용사를 포함한 투신사와 증권사의 체질 개선이 병행돼야 합니다. 자산운용업과 증권 산업이 고도산업인 것을 감안할 때 자산운용을 위한 인재양성과 자산운용 기법 등도 같이 발전해야 합니다. 이 같은 변화가 함께 일어나면 간접투자 선호 등의 투자문화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 또 증권사 역시 단순 주식 중개업무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웰스매니지먼트(자산관리업)로 구조적인 변화를 서둘러야 합니다. 투신사와 증권사의 업그레이드가 선행돼야 연기금 투자 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김 사장=공적기금에서 먼저 일정비율 먼저 투자해야 합니다. 또 투자방법도 직접투자와 간접투자를 병행해서 실시해야 합니다. 또 공적기금 운영에 대한 자율권도 충분히 보장해야 합니다. 현재 모든 연기금은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는데, 합리적인 성과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펀드매니저가 여러 펀드를 평균했을 때 높은 수익을 거뒀어도 한 두개 펀드가 손실을 기록하면 제재를 받습니다.
또 기업 연금을 관리할 수 있는 기관에서 증권사와 투신사가 빠진 점도 문제입니다. 자본시장이 발달된 미국에서는 증권과 투신사가 기업연금을 관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기업들도 배당 등 주주중시 경영에 나서야 합니다. 배당 등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면 주식투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황 사장=우리나라의 배당 성향은 20%로 아시아 전체 평균인 4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투자자들이 높은 배당을 요구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설비투자를 많이 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높은 배당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현금을 은행에 예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은 10%이상인데 4%짜리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놓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이 같은 낮은 배당은 결과적으로 국내기업이 저평가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 부원장=배당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배당지수를 개발하는 등 배당 위주의 투자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9월중에는 배당지수에 바탕을 둔 상품 판매가 가능할 전망입니다. 배당지수를 활용한 간접투자 상품이 발매되면 시중자금을 증시로 끌어올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주식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박 원장=투자자 보호노력도 강한 증시를 만드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 부원장=대우사태 이후 추락한 증권사와 투신사 등의 신뢰회복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투신사는 자산운용능력 제고를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랩어카운트를 허용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황 사장=그동안 증권사가 브로커 양성을 통한 회전율 영업에 주력한 것이 사실입니다. 증권업계 스스로 회전율에 의지한 단타매매를 지양하는 자정노력이 필요합니다. 회사 수수료 수입보다 고객의 자산관리 능력을 통해 직원을 평가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영업직원이 브로커가 아니라 자산관리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김 사장=약정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직원에 대한 평가시스템에서도 약정보다는 수익률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부차원에서도 증권사들이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객 중심의 경영이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신뢰회복도 이뤄지리라고 기대합니다.
참석자 명단
박상용 한국증권연구원장
오갑수 금융감독원 부원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김병균 대한투자증권 사장
<정리=조영훈기자, 김상용기자 dubb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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