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성장동력 여성인력 키워라] <2> 일·가정 양립 어려운 대한민국 여성

출산·육아 '魔의 3년' 못버틴 경단녀 "우리도 일하고 싶어요"
30대女 경제활동참가율 남성보다 37%P나 낮아
최근 대기업·금융권중심 경력단절여성 채용 불구 대부분 단순노무·판매직
출산·육아휴직 보장하고 제대로된 일자리 제공을

‘CJ 리턴십’에 응시한 한 여성의 남편이 아기를 안은 채 시험을 치르는 부인을 지켜보고 있다.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한 여성들 뒤에는 육아분담 등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제공=CJ

서울시가 운영하는 직장맘지원센터 직원들이 가장 많이 상담하는 사례는 출산과 육아휴직을 놓고 사측과 갈등을 빚다가 끝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다. 경기도 모 제조업체 생산관리팀에서 일하던 최지은(31)씨도 같은 이유로 상담했다. 육아휴직 의사를 밝히자 회사 측은 대체인력이 없다며 1개월만 쓰고 나머지 11개월은 나중에 쓰라고 제안했고 최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6개월 후 애를 봐주던 분이 그만두면서 최씨는 남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남자 직원들이 주로 담당하던 자리로 인사를 내면서 갈등을 겪었다. 바뀐 업무를 감당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최씨는 최근 위로금으로 월급 2개월치를 받는 조건으로 퇴사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김지미(33)씨 역시 지난 5월이 출산 예정이었지만 출산 3개월을 앞둔 2월 말 사측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사직을 권고하면서 돌연 직장을 잃었다. 김씨는 "경영 악화를 이유를 들며 사직을 권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결국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냈고 출산휴가(90일)와 육아휴직(1년)이 모두 지난 후에 퇴직하는 조건으로 사측과 합의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대한민국 산업현장에서는 임신과 출산이 축복 받아야 할 생명의 탄생이 아니라 언제든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서는 서비스업 고용비중이 낮고 30대 여성의 고용단절로 청년고용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점이 선진국형 경제 진입에 장애로 꼽혔다. 올 1ㆍ4분기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55.8%)만 봐도 같은 연령대 남성에 비해 37%포인트나 낮았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장은 "여성들이 육아 문제로 업무에 올인할 수 없는 통상 3년이라는 기간을 잘 버티면 경력단절 없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데 대한민국 산업계 현실에서는 '마(魔)의 3년'에 살아남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지적했다.

◇일과 가정 병행하는 슈퍼맘, 그들은 울고 싶다=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고화정(30)씨는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옮겨야 했다. 업종 특성상 야근이 많아 육아와 병행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고씨는 "탄력근무제가 자리잡혔다면 그만두지 않았지만 주변에 아이를 봐줄 분도 없는 상황에서 야근이 많은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한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박가영(34)씨는 둘째 출산을 2년째 미루고 있다. 3년 전 첫아이 출산과 함께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그는 복귀 후 승진(계장급)인사에서 남자 동기들에게 밀리자 둘째 출산에 부담을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박씨는 "육아휴직을 쓰면 인사고과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동료 여성 행원들도 가능하면 승진 이후로 출산을 미루면서 35세를 넘겨 아이를 출산하는 노령 임산부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현진아(35) 차장은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싸우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남편과 육아분담이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 현 차장은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와 애들을 챙기고 밀린 집안일을 하지만 남편이 접대나 회식을 이유로 늦게 퇴근하면서 가사나 육아 등 모든 책임이 나한테 전가되고 있다"며 "육아 문제로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지면서 최근에는 이혼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단녀, 우리도 일하고 싶어요=최근 대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경력단절여성을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직장을 떠났던 여성들이 일터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하고 싶은 욕구는 컸지만 대부분의 일자리가 단순노무직이나 판매직에 국한되면서 다시 절망에 빠지거는 했다. 대한항공에서 7년 동안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다 아이를 출산하며 회사를 그만둔 정미현(36)씨는 "항공기 승무원이 서비스업종인 만큼 전문성을 내세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서비스교육강사 자격증을 딴 후 프리랜서로 다시 일했지만 업무시간이나 급여조건 등을 원하는 수준으로 맞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상당수 서비스업종의 경우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없어 재취업 과정에서 애로를 겪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CJ리턴십' 1기로 제일제당에 입사한 엄지미(40)씨는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출산을 이유로 퇴사했었다. 엄씨는 워낙 작은 업체다 보니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 부담이 컸고 개인적인 편의를 봐달라고 요청하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경력단절 기간만 5년. 여러 번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엄씨는 "프리랜서라는 보기 좋은 타이틀을 가진 일자리가 종종 있지만 노동강도에 비해 적합한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전했다.

황현숙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장은 "경력단절 예방 차원에서 지금의 일자리를 잘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 및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남편들의 육아휴직 활성화, 공공영역을 통한 육아휴직신청제도 정착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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