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이 외면을 받은 배경을 찾다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통계'조차 부실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초 공사도 하지 않고 건물(정책)을 지으려니 부실 공사가 생기는 것이다. 통계가 빈약하고 잘못돼 있으니 현장의 목소리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권의 대선공약이나 당국의 중점 정책이라는 이유로 추진했지만 정작 업계와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과 엇갈렸던 셈이다. 정부 정책을 실행하는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6일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상자가 실제 몇 명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인 경우도 많다"면서 "정부가 아래에서 올리는 보고서만 보고 정책을 만들지 말고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실한 통계가 낳은 예견된 실패=최근 정부가 발표한 전월세대책은 통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세입자의 공제를 높인다고 했지만 전월세 임대차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임대사업자 등록이 임의규정이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2012년 기준으로 주택임대소득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한 9억원 이상 고가주택 보유자와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주택임대소득 신고안내를 한 인원은 34만여명이었다.
이중 종합소득세 신고시 주택임대소득을 자진신고한 인원은 8만3,000여명이었다. 이 가운데는 주택임대사업 등록자 7만7,000여명이 포함돼 있다. 즉 주택임대사업 등록자가 아닌 자진신고자는 6,000여명(전체의 1.8%)에 불과하다. 국세청이 일일이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과세대상인 주택임대소득자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정보유출 사태 이후 보험사 전화영업(TM)에 대한 영업금지와 철회 과정도 업계는 통계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부는 보험사 전화상담원(TM 종사자)의 숫자는 3만1,000명이며 이중 영업금지를 받은 적극적 TM 종사자는 2만 6,000명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들의 영업을 풀어주면서 영업금지 기간에도 보험사가 TM 종사자 급여의 70%까지 보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전화로 보험상품을 파는 홈쇼핑이나 카드사 혹은 보험사에 전속되지 않은 일반대리점(GM)의 TM 종사자는 대책에서 빠졌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통계에 들어 있지 않은 비전속을 합치면 최소 6만명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추산"이라면서 "정부가 개인정보불법 수집을 금지하거나 TM 영업을 재개하면서 급여를 보장하는 정책은 보험사까지만 영향을 미치지 비전속 TM 종사자에게는 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사 전속이 아닌 GM 종사자의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가 몇 명인지, 당국의 지침을 잘 이행하는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세법개정안 수립 과정에서 문제가 된 중산층의 분류 기준 문제도 따지고 보면 통계의 미숙에서 발생한 것이다.
◇쏟아내는 정책 외면하는 현장=현장 목소리가 담기지 않고 내놓은 정책은 '수요예측 실패'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금융위원회가 야심차게 내놓은 증권업 활성화 방안은 거의 모든 증권사가 무관심하다. 지난해 5월 증권사의 경쟁력 있는 사업 부문을 떼어 특화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지 나선 증권사는 없다. 증권사별로 차별화된 사업 부문이 없는데다 추락하는 실적 앞에 새 사업 분야로 나서려는 움직임도 없다.
금융위는 증권사 간 인수합병과 대형 증권사의 지점영업 축소 및 투자은행 업무 활성화를 추진했지만 이 역시도 업계는 시큰둥하다. 증권업 불황으로 증권사 인수에 소극적이고 주로 금융지주회사 계열사인 대형 증권사들은 은행 출신 인사가 경영하면서 지점 영업에 의존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운보증기금은 대선 당시 부산 민심 달래기용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정부는 당초 정치권이 제시한 규모 2조원에서 축소한 5,500억원 규모로 부산에 설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위기에 직면한 중소선사들은 지원대상에서 빠졌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대선 공약이었던 재산형성저축·월세대출 역시 은행과 소비자의 냉대를 받고 있다. 재형저축 계좌는 지난해 6월 말 182만8,540개로 최고 기록을 세운 뒤 7월부터 현재까지 하락세다. 7년간 돈이 묶이지만 다른 적금보다 금리가 높지 않고 소득공제 혜택도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보험민원 감축 정책은 악성 소비자가 제기한 민원까지 받아줘야 한다는 업계의 비판이 여전하다. 업계 관계자는 "악성 소비자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내용과 관계없이 민원평가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에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떨어지면서 현장의 목소리와 멀어졌고 두 기관 간의 엇박자도 심해졌다"면서 "금융감독체계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성 없는 대책이 또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