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특별기획, '이제는 말할수 있다''부산美문화원 방화' 진상 밝힌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5·18에 있어서 미국의 책임을 묻고자 불을 질렀다.』 80~90년대 반미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후 「부미방」)의 주역 문부식·김은숙씨 등이 밝힌 방화동기이다.
전두환정권이 안정기로 접어들던 1982년 부산시내 미국의 상징격인 미국문화원 건물이 불타올랐다. 일명 「부미방」, 이 사건은 반미운동의 무풍지대로 인식돼온 남한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온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이후 반미운동의 효시로 받아들여진 「부미방」이지만, 사건현장에서 한 명의 학생이 숨졌다는 점과 「방화」 자체가 갖는 폭력성 때문에 당시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부미방」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이번주 MBC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82년 『반미』를 외침과 함께 불타올랐던 「부미방」의 진상을 되짚어본다. 24일 밤 11시50분 방송.
사실, 문부식 등이 80년 5월 광주의 참혹상을 몰랐다면 「부미방」이 그토록 과격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80년 민주화를 열망하던 광주시민들은 군인들에 의해 무고한 죽음을 당했고, 군 작전권을 가진 미국은 이를 모른 척했다. 여기서 문부식을 비롯한 「부미방」의 젊은이들은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라는 기존의 믿음에 배신을 느끼고, 방화를 결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방화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문부식을 비롯한 관련자 대부분은 재판정에서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여기에다 수사과정에서의 잔인한 고문과 「빨갱이」 자백 강요, 국민들의 무관심까지 그들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82년 「부미방」 관련자들의 요구는 미국이 5·18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 및 한미연합사령관 위컴 등은 지금까지 「미국의 책임」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음은 물론, 당국자의 공식사과도 전혀 없었다.
아직 한미관계가 올바른 정립 단계에 이르지 못한 지금, 그래서 「부미방」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문성진기자HNSJ@SED.CO.KR
입력시간 2000/09/2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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