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6월16일] 풀 뜯어먹는 사자

몇 년 전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장에서 능력과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한 지원자가 눈에 띄었다. 필자를 포함한 면접관들은 그가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지원한 분야가 이미 회사에서 사양사업으로 분류하고 한창 정리하는 와중에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면접관들은 지원자를 거꾸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추진하는 새로운 사업 분야가 자네한테 오히려 큰 기회가 될 걸세. 그쪽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나?” 하지만 지원자는 자신이 지원한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요지부동이었다. 회사의 인사팀까지 나서 설득했지만 지원자는 회사의 제의를 끝내 거절했다.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는 말과 함께. 경기침체 여파로 요즘 2030 세대가 취업을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웬만한 기업 공채시험 경쟁률이 100대1을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취업대란을 피해 졸업을 1학기 또는 1년 연기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손꼽히는 CJ그룹의 경우에도 채용과정에서 무려 수백대1이 넘는 엄청난 지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우수 인재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선발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면접장에서 “이 분야를 지원한 이유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의외로 상당수 지원자들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심지어 ‘이 분야도 좋고 다른 분야도 문제 없습니다’는 식의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유사 이래 최악이라는 취업난을 고려해볼 때 어떻게라도 좁은 관문을 통과하려는 지원자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든 들어가겠다는 생각에 앞서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살릴 수 있는 분야가 어디인지, 또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소신과 패기에 찬 모습이 아쉽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잡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과 상관없는 분야에 어떻게든 들어가게 된다면 입사의 기쁨은 잠시, 자신과는 맞지 않는 업무 성격에 고민하고 장래에 대해 방황하기 마련이다. 기업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만두는 신입사원의 비율이 30%에 달한다는 한 취업 포털사이트의 조사는 이 같은 세태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개월을 허송세월한 신입사원이나 그를 회사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회사 모두 손해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만두지 않더라도 관심과 적성이 떨어지는 일에 신명이 날 리 없고 조직에 대한 애정 역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자는 배를 곯아도 풀을 뜯지 않는다’던 지원자의 소신.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인난을 겪는 역설적인 현 상황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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