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이하 금산법) 개정안과 관련, 분리대응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한 것은 ‘입법취지’와 ‘기업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벌이 금융사의 고객 돈으로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는 재벌개혁의 취지를 살리면서 기업에 미치는 부담을 줄이고 위헌 등 법률시비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우리당이 강제성 없는 권고적 당론으로 정한 분리대응안이란 내용상으로는 국회 재경위 소속 박영선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일괄해소안’과 정부안의 중간이다. 정부안은 금산법 제정시점인 지난 97년 3월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2%)은 불문에 부치고 그 이후 삼성카드가 취득한 에버랜드 지분(25.6%)은 의결권만 제한하자는 것인 데 반해 박 의원의 안은 5%를 넘는 지분은 취득시점과 상관없이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리대응안은 97년 3월 이전과 이후를 나눠 대응하되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 5% 초과분은 의결권만 제한하고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5% 초과분은 유예기간을 주고 이 기간에는 의결권만 제한하면서 자발적인 매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특히 유예기간 동안 자발적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정부가 처분명령을 내리고 명령이 이행될 때까지 주식장부가액의 1만분의3에 해당하는 금액의 ‘이행강제금’을 매일 부과하도록 돼 있어 사실상 ‘강제매각’이라고 볼 수 있다. 정세균 당의장은 의총에서 “초일류기업인 삼성부터 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입법 가능성을 높이고 현실적으로 원칙을 관철시켜나갈 방안으로 이 같은 분리대응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당이 분리대응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정했지만 당론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분리대응안이 당내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결정됐다기보다는 강력한 지도부의 의지로 때문에 결정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의총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쳤고 과반의 동의를 얻기는 했지만 전체 의원 144명 중 87명만이 의총에 참석한데다 그 이후에 속속 자리를 떠 당론 채택을 위한 정족수에 미치지 못했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아 결국 ‘의무 당론’ 채택은 불발로 끝났다. 일부 의원은 금산법 개정안을 놓고 당론 채택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자체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권고적’ 당론의 한계상 추진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재경위 법률심사소위→재경위 전체회의→본회의’ 등 본격적인 장애물들을 무난히 넘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일단 제1관문인 재경위 법률심사소위의 문턱부터 버거워 보인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고 박 의원의 안도 부족하다며 자체안을 제출한 민주노동당도 분리대응안에 강력 반대하고 있어 소위 논의부터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종률 의원 등 재경위 소속 우리당 의원들 일부가 위헌 소지 등 법률시비 문제를 이유로 분리대응안에 여전히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당의 권고적 당론인 분리대응안은 42.195㎞의 마라톤을 앞두고 이제 겨우 반환점을 통과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