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교역조건 악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 130에 육박하던 순상품교역조건지수(2005=100)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 1ㆍ4분기에는 80.5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수출채산성 역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수출채산성은 수출제품 단위당 벌어들인 이익을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로 수출가격을 수출비용(생산비)으로 나눈 수치다. 수출채산성(2000년=100)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에는 68에 머물렀다. 수출비용(생산비)이 100인데 수출가격은 68이어서 아무리 수출을 하더라도 기업들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교역조건 악화, 지속될 가능성 높아=문제는 우리의 무역구조상 교역조건 악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수입품은 ‘희소성’ 때문에 국제적인 가격인상을 100%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원자재 비중이 절대적인 반면 수출품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최종제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입단가는 원자재가 상승이 100% 반영되면서 꾸준히 오른 반면 우리의 주요 수출상품은 전기ㆍ전자, 중공업 제품 등 최종생산품으로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원자재 인상을 100%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역조건 악화는 실질무역손실로 나타난다. 교역조건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빠져나가지 않았을 엄청난 소득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음을 뜻한다. 실질무역손실은 상반기 기준 2004년 12조6,000억원에서 2006년 34조4,000억원, 2008년 54조9,000억원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구매력 기준으로 국내 실질소득의 감소와 내수부진을 가져오는 한 원인이 된다. ◇흔들리는 흑자구조=대일 무역역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도 한국 수출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반기에 대일 무역적자는 170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 62억달러의 2.7배에 이른다. 이 같은 현상은 대일 수입품목 중 중간재의 비중이 70%에 달하고 있고 특히 소재류인 반제품(半製品)의 수입이 전체 수입의 5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일본에서 소재와 반제품을 수입해 일부 가공한 뒤 수출하고 있어 수출이 늘어봐야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대일 수출증가율과 수입증가율의 상관계수를 보면 1990년대 0.660이던 것이 2000년대 들어 2007년까지 0.898로 급증했다. 즉 1990년대에는 우리 수출이 100 늘면 대일 수입이 66 늘던 것이 2000년대에는 거의 90이 늘어 상관관계가 더욱 밀접해졌다. 반면 대중 흑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05년 233억달러를 정점으로 지난해 190억달러로 줄었고 올해도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하강할 가능성이 높아 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정환우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기술수준이 급상승함에 따라 고위ㆍ중고위기술 부문에서는 무역흑자가 늘고 있으나 중저위기술에서는 흑자가 급감하고 있고 저위기술에서는 오히려 적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흑자국인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규모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도 우리의 무역수지 흑자 전망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괴리 확대=정보기술(IT)과 중화학 공업에 의존하는 우리 수출은 중간재 등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다. 또한 최근 많은 대기업의 공장 자체가 해외로 이전돼 있다. 이에 따라 수출급증이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갈수록 줄고 있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매출은 2000년 국내에서 72.5%, 해외에서 27.5% 발생되던 것이 2007년에는 국내매출이 54.5%로 줄고 해외매출은 45.5%로 급증했다. 한은 관계자는 “수출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으나 각종 부품소재 등 중간재는 수입에 의존하면서 수출과 내수간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성장과 고용간 괴리도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내수부진으로 일자리 창출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으나 무한질주하고 있는 수출은 전혀 구원투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심각한 고용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출 호조세를 내수확대와 고용증대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대기업-하청 계열기업간 교차납품 확대 등을 통해 수출대기업이 부품ㆍ소재 조달처를 해외에서 국내로 전환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