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두 얼굴

며칠 전 조간신문에 크지는 않지만 퍽 대비되는 두 기사가 나란히 실려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세계 주류업계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세미나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우리나라가 값비싼 위스키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어 세계 위스키 업체들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게 첫번째 기사의 줄거리였다.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 사람들조차 엄두도 못 내는 고가 술을 물 마시듯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비아냥 같은 것도 배어 있는 듯 했다. 따지고 보면 값비싼 양주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비록 일부 부유층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비싼 것일수록 잘 팔린다는 이른바 '명품 바람'이 분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아예 가격표나 흥정따위의 귀찮은 절차를 생략하고 사는 사람이 집어주는 것이 가격인 희한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도 있다. 비싼 것일수록 잘 팔리는 현상은 수입 소비재에서만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수십억원 짜리 고가 빌라나 아파트가 등장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도 환란에 빠진 직후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국제사회에서 환란국가의 낙인이 찍히고 경쟁력의 위기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소비생활만큼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최상급으로 뛰어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 주류업계의 희망이 되고 있는 나라에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비관론을 오버랩 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 모자이크 조각처럼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위기론을 호사가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전문가들의 공연한 호들갑쯤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같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그 동안의 구조조정은 기업부채를 정부부채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던 외국 언론들도 부쩍 우리경제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횟수가 늘고 있다. 과도한 가계부채ㆍ소비위축ㆍ부동산거품 붕괴와 은행 부실화ㆍ연기금 고갈 등이 경제위기론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지금처럼 흥청망청하는 경우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15억~9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국으로 되돌아 간다는 전망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가 세계 위스키업계의 희망이 되고 있다는 외국언론의 보도는 마치 날카로운 송곳처럼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가 수입 위스키 수입때문에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우리경제가 당장 거덜나는 일은 없겠지만 고가 위스키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소비행태는 우리 경제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주류업계와 명품 업체들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경제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안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를 불러일킬만도 하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술이든 상품이든 고급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고가 술 소비나 명품바람이 반드시 소득수준과 비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득수준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몇 배나 소득이 높은 나라들이 당연히 세계 위스키업계의 희망이 돼야 한다. 한쪽에선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는 있는 가운데 비싼 수입 양주, 명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아니러니컬한 현상은 결국 광범위한 부패구조와 불로소득. 그릇된 비즈니스관행과 접대문화 등 우리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란 진단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성장도 중요하고 하루빨리 소득을 높여 잘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소득을 올리는 것이 세계 주류업계와 명품의 봉 노릇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곤란하다. /논설위원(經營博) srpark@sed.co.kr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