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몽둥이'. 들으면 섬뜩한 표현이다. 폭력 교사를 뜻하는, 로마 시대에 사용했던 말이다. 당시'미친 몽둥이'라 불린 주인공은 그리스 노예 출신 학자 루키우스 오르빌리우스 푸필루스. 그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반 지성주의자들을 물어 뜯었다"고 하며"누가 됐든 몽둥이와 채찍으로 휘갈겨 큰 대자로 눕혔다"고도 한다.
이 일화는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69년∼130년께)가 남긴 문법학자 전기(傳記)에 기록돼 있다. 책은 당대를 주름잡은 문법학자 26명을'인물 열전'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117년께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에토니우스가 남긴 이 전기가'로마의 문법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의 번역과 주해로 국내 첫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로마에 학문의 씨앗을 심어준 건 다름 아닌 그리스 노예 출신 학자들. 당시 전쟁을 끝낸 로마는 원로원과 민회를 중심으로 공동의 일과 재산이 공동의 참여를 통해 처리되고 운용되는 공화정체제였다. 전쟁기술이 뛰어난 이보다 말(언어) 기술이 뛰어나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자 로마인들은 자녀교육에 적극 나서게 된다. 이 때 로마에 정복당해 노예가 됐던 그리스 지식인이 로마로 건너와 문법학자나 번역가, 가정 교사, 대중 강사 등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문법은 현대적인 의미의 문법만이 아니라 읽기, 쓰기와 관련된 기초 교육프로그램을 가리킨다. 로마 학문이 독자적 체계를 갖추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기까지 노예 출신 문법학자들의 교육과 번역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책은 문법학을 로마에 처음으로 도입한 크라테스 말로테스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가정교사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그니포,'스타 강사'였던 베리우스 플라쿠스 등 로마 시대'글 선생'인 문법학자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또한 생존을 위한 교육의 한계를 짚어내며 문법학자들에 대한 날 선 비판도 담았다.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