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김동근 한국산업단지공단
입력 2003.12.21 00:00:00
수정
2003.12.21 00:00:00
올 한해 한국경제는 `수출`때문에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주도 아래 설립, 운영되고 있는 국가산업단지(국가 공단)는 전체 수출의 40%이상을 차지하며 국가경제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기업들은 인력난, 입지난에 노사문제 등을 이유로 생산기반을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국내의 제조업 기반이 허물어지는 이른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김동근 이사장을 만나 올해 수출실적과 내년 전망, 그리고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해법 등을 들어봤다.
-올 한해 우리 경제가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수출 호조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산업단지 중 구미단지는 2년 연속 수출 200억 달러 달성을 비롯해 상당한 수출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산업단지의 수출 활황세는 휴대폰, 전자교환기, TFT LCD, PDP TV 등 ITㆍ전자 부문의 선전 덕택이다. 이들 업종은 수출물량이 넘쳐서 납기일을 맞추느라 24시간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을 정도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전기전자 등 수출이 잘되는 업종과 대기업 계열 공장이 주로 입주한 구미, 창원, 울산, 여수단지의 가동률은 85~90%에 이른다.
그러나 산업단지 중에도 내수 중심 단지나 영세기업이 밀집한 수도권의 중소 산업단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수출주력 업종이나 대기업은 잘 나가고 중소기업들은 어려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그렇다면 생산현장에 있는 기업들은 내년 경기를 어떻게 보는지.
▲최근 국가산업단지 입주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경기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113으로 나타났다. 수출주력 업종인 반도체, 조선, 자동차, 전자장비 쪽은 150까지 나오고 있었다. 내년에도 수출이 호조를 이어가 경기회복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업단지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이 주로 입주해 있어 전체적인 경기보다는 다소 전망과 실적이 양호하게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내수 경기회복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수출과 내수의 차이를 얼마나 메워나가느냐가 내년 경기의 향방을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경기회복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산업단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인데, 이를 위해선 산업단지의 모습도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산업단지가 경제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높아지면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구조고도화란 산업단지를 단순히 생산시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대학, 연구기관, 입주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종합 집적시설(클러스터)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산업단지의 효율성을 높여갈 때만 생산과 수출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학, 연구기관, 입주기업들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이들이 함께 모여 포럼이나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는 허브공간을 마련한다. 이곳에서 기업과 연구단체들이 모여 필요한 기술을 공유하고, 자금 확보방안을 마련하며, 어떤 정책과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지 등을 현장에서 직접 논의한다. 이런 네트워크를 연결해 필요한 모든 것을 현장에서 마련, 투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 전반의 효율성은 물론, 기업들의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단지 리모델링 사업이 한창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드웨어적인 차원에서 산업단지의 전반적인 재정비와 소프트웨어적인 지원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각 단지별 물류 시스템 정비를 통해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인다든지, 또 산업단지별 종합 인터넷 망을 구축해 입주기업들의 자금지원, 구인, 상품정보 등을 통합 지원한다든지 함으로써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하고 있다.
또 산업단지별로는 업종별 고도화 및 유망 신산업 육성을 위해 시화단지의 메카트로닉스 전용임대단지 운영, 광주첨단단지의 하이테크센터 건립, 창원단지의 아파트형 공장 증축 및 제5공장 건립, 키콕스 벤처센터의 2단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구조고도화 촉진을 위해 산ㆍ학ㆍ연 기술 네트워크 구축, 공동 물류화 사업 등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갈 방침이다.
-기업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는데 산업단지공단이 지원하는 서비스와 현재 우리 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는 어떤 것인가.
▲현재 추진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공장설립지원센터`와 `공장설립 콜센터` 사업이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공장을 지으려면 입지선정부터 각종 인허가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공장설립과 관련된 법령이 70여개, 인허가 사항은 50여건에 달하는 판국이다.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올해부터 공장 설립과 관련된 모든 문의나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는 `공장설립 콜센터(1566-3636)`를 만들었다. 전화 한 통으로 상담은 물론, 산업단지나 개별입지에 관계 없이 분양 및 입주관련 사항상담, 알선기관 협의 등 인ㆍ허가 업무 무료대행, 자금지원 알선, 환경ㆍ세제관련사항 안내 등을 도맡아 처리해준다. 우리 기업들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사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만들기도 이런 현장의 애로사항 해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51.8%가 5년 이내 국내 공장을 폐쇄하거나 축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결국 기업들은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에 대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제조업 공동화를 너무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보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산업 고도화 과정을 겪으면서 제조기반 시설의 해외이전 현상이 일어났다. 대신 그 과정에서 비제조업 분야, 이른바 서비스, 물류, 유통 등이 산업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이 대거 높아지면서 이 분야에서 대량으로 고용을 창출해 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제조업종도 점점 더 인력공급 위주보다는 최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함께 변화해 갔다. 이 같은 현상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첨단기술산업이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성장하느냐, 또 비제조업 분야를 통해 또 다른 고용창출을 이뤄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이 과제를 해결해 냈다면 성공적인 산업구조 고도화가 이뤄진 셈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결국 산업 전반에 있어 공동화 현상이 닥치게 된다고 본다. 현재 우리는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국가 산업단지만 보아도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탈한국`을 선언하며 중국행을 결정한 상태다. 여기에 중국 내에 한국기업 전용 산업단지까지 마련되는 등 중국행 러시가 점점 붐을 이루고 있는 형국인데.
▲실제로 산업단지의 경우 중국 이전 기업들 중 제조시설 전체를 모두 중국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기반시설은 한국에 남겨 놓은 채 중국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흐름을 이해하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주력산업 분리 및 육성을 계획해야 한다. 일본처럼 정보기술 등 신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핵심기술이나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해외유출을 억제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국가산업단지의 비전과 목표에 대해 설명해달라.
▲전국에 퍼져있는 국가 및 지방산업단지는 이제 국내 경제의 핵심 거점이다. 입주한 업체수만 2만 6,900여개에 이르고 있어 그야말로 국내 제조업의 메카를 이루고 있다.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해 이들 산업단지가 지식기반 경제시대의 도래, 정보화의 급속한 확산 등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하기 좋은 일등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자, 목표다.
대담= 박민수 성장기업부장 minsoo@sed.co.kr
[발자취]
현지경영으로 기업목소리 반영, `공장설립 콜센터` 中企호응 커
김동근 이사장은 마라톤을 즐긴다.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한 두 시간만 투자해도 운동 효과는 만점이라며 마라톤을 적극 권유한다. 주말마다 틈을 내 친구들과 만든 동호회에서 단거리 마라톤을 즐긴다. 또 `한국산업단지공단 마라톤동호회`(산단마)를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자주 참가하고 올 10월에는 새롭게 변모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색적인 제1회 넥타이마라톤대회를 열기도 했다.
김동근 이사장은 1946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72년 제8회 기술고시에 합격한 후 특허청, 상공부 등을 거쳐 농림부에서 20년이 넘게 근무하다가 농림부차관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올해 1월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사무실에서 업무보고를 받기보다 우리경제의 뿌리인 산업단지와 입주기업체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현장을 꼼꼼히 살피고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는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진정한 서비스라고 강조하는 그는 최근 기업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인 공장설립과 관련한 지원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 어디서나 전화 한통(1566-3636)으로 손쉽게 해결해주는 `공장설립콜센터`(팩토리콜)를 개소해 중소기업인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마라톤 마니아답게 목표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경영스타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김 이사장은 충북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과 수도권의 주요 대학 강단에서 틈만 나면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중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아는 지식을 실천하는 노력을 쏟고 있다.
● 약 력
▲46년 울산 출생
▲73년 서울대 농학과 졸업
▲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대학원 수료
▲72년 제8회 기술고시 합격
▲79년 상공부 농촌공업과장
▲99년 산림청 청장
▲2000년 농림부 차관
▲2002년 충북대학교 초빙교수
▲2003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산업단지 변천사]
1964년 최초공업단지 `구로공단` 건설, 70년대 중화학공업화 위해 본격 개발
국가가 주도한 산업단지, 이른바 `공단(공업단지)`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산업 입지다. 국내의 경우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지난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계획 및 설립됐다.
▲1960년대 : 60년대 초반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은 재일교포 유치 등을 위해 1964년 국내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 건설을 시작했다. 노동집약적 경공업 중심의 구로공단은 서울 구로동에 1∼3단지 그리고 부평 및 주안에 4∼6단지까지 확장되면서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 되었다. 이 때 구로공단의 정식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1970년대 : 본격적인 공업단지 건설이 시작됐다. 정부는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내세우며 대규모 공업단지 개발정책을 추진했다. 73년 제정된 `산업기지개발촉진법`으로 전자 및 섬유의 구미공단, 기계 및 방위산업의 창원공단, 석유화학의 여천공단이 각각 조성됐다.
▲1980년대 :수도권으로 집중된 과밀인구와 산업집중에 따른 주택ㆍ교통문제, 환경문제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하여 국토의 균형발전과 산업공해 완화 등이 추진됐다. 공업단지도 신도시건설 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중소기업 전문단지인 반월공단을 모태로 최초의 계획도시인 반월신공업도시 건설이 시작됐다. 뒤이어 남동공단과 시화공단에 이르는 수도권의 3대 대규모 중소기업단지가 이 때 조성됐다. 또 84년부터 전국에 걸쳐 추진된 농공단지 조성으로 공장용지 공급이 크게 늘게 되었다.
▲1990년대 :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호남권과 충주권 등 낙후지역에서 공업단지가 집중 개발되기 시작했다. 호남에선 전남 대불공단과 전북 군산공단이, 경기련力?아산공단, 강원도에선 북평공단이 각각 조성됐다.
▲2000년대 : 2000년도에 시화공단 유보지 50만평 분양을 끝으로 수도권에 공장용지 공급이 끊기자 수도권의 공장용지난이 심각해졌다. 이 결과 수도권 산업단지 내에 임대공장이 급증하거나 아파트형 공장이 대거 들어섰다.
<현상경기자 hsk@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