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ㆍ중소기업 지원'은 정부나 정치권이 세금을 깎아주거나 환급해줄 때마다 단골로 내세운 간판이었다. 그 혜택이 점점 늘다 보니 이제는 나라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정부도 국회도 쉽게 구조조정에 나서질 못했다.
이처럼 금단의 영역이 돼버린 서민ㆍ중소기업 비과세ㆍ감면 조항에 정부가 드디어 칼을 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연구원이 26일 정부의 용역을 받아 발표한 비과세ㆍ감면제도 정비안을 보면 서민근로자와 중소기업에 돌아가던 세제 혜택이 대거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낙제점이란 정부부처 자체평가 등에서 35점 미만의 점수(미흡 혹은 아주 미흡)를 받은 것인데 기획재정부는 이들 낙제점 항목들 중심으로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세제 감면을 줄일 방침이다. 조세연은 "세제지원을 분야별로 분석하면 근로자ㆍ농업ㆍ중소기업에 돌아가는 지원 비중이 63%에 달해 지나치게 특정 분야에 치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서민근로자와 중소기업 등에 대한 비과세ㆍ감면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녀양육비 추가공제 등 대거 조정=조세연이 아주 미흡, 미흡으로 분류한 44개 항목에는 자녀양육비 추가공제(2,504억원)와 출생ㆍ입양에 대한 추가공제(670억원) 등 일명 '자녀세제'들이 포함됐다.
정부는 내년부터 자녀장례세제(CTC)를 도입할 방침인데 이런 소득공제 항목을 유지하면 중복혜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행 소득공제제도상 자녀장려세제와 유사한 소득공제 항목은 ▦다자녀 추가공제 ▦자녀양육비공제 ▦부녀자공제 ▦출생ㆍ입양공제 등 4건에 달해 정비가 예고돼왔다. 김학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세의 세수 확보 및 소득 재분배 기능을 확대하려면 추가공제 항목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흡으로 분류된 경로우대자 추가공제(3,963억원) 역시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의 형태로 개선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근로자 일부 타격=정비 대상에 포함된 일부 비과세ㆍ감면제도는 서민근로자 가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택시운송사업자에 대한 부가가치세 납부세액 경감(1,576억원)과 경형 자동차 및 소형 화물자동차 연료에 대한 유류세 환급(99억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택시사업자 세액 경감제도는 일반택시운송사업자에 대해 부가세 납부세액의 100분의90을 경감해주는 제도로 이렇게 감면된 세금은 택시운수종사자에게 전액 현금으로 지급돼 사실상 소득을 일정 수준 보전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종료돼야 하지만 이미 이를 3년 더 연장해달라는 입법안이 제출돼 있다.
또한 경형 자동차 등에 대한 유류세 환급은 1,000㏄ 미만 경차나 1톤 이하 자가용 화물차 소유자가 구매한 유류세를 연 10만원 한도 내에서 돌려주는 제도인데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장 혜택이 종료되면 서민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실효성 없는 중소기업 조세지출 정비=중소기업에 대한 비과세ㆍ감면제도는 실효성이 크지 않은 제도를 중심으로 정비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유지 중소기업 등에 대한 과세특례(3억원)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증권거래세 면제(29억원)는 사실상 혜택이 거의 없어 있으나 마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는 이와 더불어 기업들의 설비투자에 적용되는 각종 세제지원제도를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개편할 계획이다. 특히 연구개발(R&D)과 관련한 세액공제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조세연의 연구 결과다. 중소기업 연구전담인력의 학력 기준을 상향 조정해 일부 기업들이 부적격 연구인력을 채용해 세금 혜택만 받는 행위를 차단해야 한다고 조세연은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