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폭탄을 떠안은 기분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여권의 한 고위인사가 서울경제신문과 기자와 사석에서 만나 던진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 등의 공약사업을 과도하게 벌이면서 늘어난 나라살림의 뒤치다꺼리를 현 정부가 져야 하는 부담감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처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던 지방 공약을 모두 지키기 위해 정부가 이행계획을 내놓았지만 사업비 규모가 큰 주요 사업은 줄줄이 현 정부 임기 후반 이후 착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5일 발표한 지방 공약 총 사업비는 124조원. 이 중 약 6조원은 정부가 재원조달계획을 마련한 국정과제사업에 이미 포함된 사안이다. 반면 나머지 118조원은 정부가 국정과제와 별도로 추가로 돈을 조달해야 한다. 이처럼 자금 확보가 불투명한 프로젝트들의 착공이 현 정부 임기 후반부 이후로 미뤄지면 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 공약을 지켰다는 생색만 내고 비용 부담은 철저히 후임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어떤 사업은 차차기 정부가 떠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정부가 나열한 공약사업들을 보면 앞날이 오리무중인 사업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업비가 11조원대에 달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 당국자들은 이 사업의 첫 삽을 뜰 때까지 길게는 6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예비타당성조사에만 1년가량 걸리는데 GTX의 경우 지난 2011년에 시작된 조사 결과가 아직도 안 났다"며 "예타를 통과해도 착공까지 대형사업은 5년 이상이 걸리므로 올해 결론이 나지 않으면 현 정부 내 착공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남해안 철도고속화사업, 수서발 KTX 노선 연장(의정부), 송정~목포 호남고속철도사업, 광주~완도 고속도로, 전남~경남 한려대교, 여주~원주 및 원주~강릉 복선전철, 보령~울진 동서5축 고속도로 건설 추진, K2공항 이전 추진 등도 임기 내 사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 중에는 아예 사업성이 없어 정부가 사업 축소나 추진 속도조절을 계획 중인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 한려대교, 광주~완도 고속도로, 여주~원주 복선전철, 동서5축 고속도로 등이다. 정부 당국자는 "여주~원주 복선전철의 경우 복선으로는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 단선으로 사업을 변경하고 광주~완도 고속도로는 전체 사업구간 중 그나마 다소 타당성이 있는 광주~해남 구간만 우선 추진하고 나머지는 미루는 방안이 있다"고 전했다.
송정~목포 호남KTX사업의 경우 정상적으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3년여 정도 내에 착공이 가능하지만 무안과 나주 등 일부 이해관계 지역민들의 분란이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수익성 있는 사업은 타당성이 높아 비교적 착공이 빨리 될 것 같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바로 민자사업으로의 전환 여부다. 정부는 국비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민자로 추진하는 방향을 검토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는 비용 면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적정수익 보장을 요구하는 민간투자자와 지난한 협상을 동반하므로 시간 측면에서는 일반 재정사업보다 더 지연될 수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민자사업인) 신분당선의 경우 20대 청년 사무관으로 일할 때 추진됐는데 중년 간부가 되고 나서야 일부 구간만 겨우 완공됐고 미착공된 곳도 있지 않느냐"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구체적인 재원조달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이다. 해당 사업비 중 84조원은 사업 추진 방식조차 정해지지 않은 신규사업이어서 구체적인 재원조달계획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설명도 타당하다. 그러나 자금조달계획을 짜지도 못한 사업을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라는 이유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