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ㆍLCD 장비 업체들이 최근 대거 인수합병(M&A)에 의해 경영권이 바뀌면서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상당한 펀드멘털을 갖춘 우량 업체의 오너가 경영권을 내놓는가 하면 일부 업체는 적대적 M&A 세력과 지분 경쟁을 벌이는 등 최근 들어 반도체ㆍ장비업계에 M&A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는 양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엔트로피ㆍ씨티엘(구 라셈텍)ㆍ오엘케이ㆍ케이이엔지 등의 경영권이 바뀐 데 이어 신성이엔지 등 일부 업체의 최대주주는 외부 세력과 지분 경쟁에 나섰다. 가장 최근인 지난 13일 경영권이 바뀐 엔트로피의 경우는 한창 사업이 순조로운 시기에 김문환 사장이 보유 지분을 매각해 눈길을 끌었다. 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이번 지분 매각으로 2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매각 차익을 봤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3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 LCD 소모성 부품 분야 국내 1위 업체를 손쉽게 넘긴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김 사장의 한 지인은 "최근에 대만 법인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주력 사업에서의 마진도 여전히 높은 상태였던 만큼 사업에 기인한 고충보다는 아마도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 것 같다"고 추론했다. 반면 씨티엘ㆍ오엘케이ㆍ케이이엔지 등 대부분의 업체는 LCD 업황이 어려워지면서 최대주주가 지분을 넘긴 쪽에 가깝다. 씨티엘은 경영진이 바뀐 이후 휴대전화 제조업ㆍ지열냉난방시스템 등으로, 오엘케이과 케이이엔지는 각각 유전개발과 에너지 재생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대기업만 쳐다보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 한편 업계에서는 이 같은 M&A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장비 업체들로서는 대기업의 설비투자에 전적으로 의존적인 상황에서 단가인하 압력마저 거세져 영업환경이 팍팍한 데다, 경영진의 M&A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도 예전에 비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상당수 업체가 시설투자에 나서면서 전환사채(CB)ㆍ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발행한 탓에 최대주주 지분이 20% 전후 수준에 불과, 인수업체 입장에서도 경영권 인수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은 편이다. 실제 탑엔지니어링, 신성이엔지 등은 최근 각각 개인투자자와 귀뚜라미보일러의 적대적 M&A 시도에 노출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비즈니스 특성상 이번 기회에 홀가분하게 한몫 챙기고 사업을 털려는 경영진이 있는 거 같다"며 "M&A가 사업 구조조정으로 한계 기업의 회생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ㆍLCD 분야 전후방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는 인수 의향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건실하게 사업을 영위해 온 업체들도 적대적 M&A시도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