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간첩 소식에 "뭘 신경쓰냐" 담담

20명이 24시간 3교대 근접경호
다시 주목받는 황장엽 전 北노동당 비서

황장엽(사진)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남파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간첩이 검거된 것과 관련, 당사자인 황씨는 "뭘 그런 걸 신경쓰느냐"고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21일 전해졌다. 황씨의 한 측근은 이날 "어제 저녁 간첩들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보고 황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냐'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황 선생님은 2006년 손도끼 협박 때도 '어치피 죽을 거 그쪽한테 죽어도 상관없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최근에도 왕성한 대외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10일간의 일정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공개 강연을 하고 정부, 민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황씨는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강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녀석 만난 일도 없고,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달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비공개 강연에서는 "북한의 군부도 사상교육이 돼 있어 반란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등 북한 핵심지도층을 겨냥한 발언들을 잇달아 쏟아냈다. 그는 또 국내에서는 대학생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안보강연을 부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대북 단파라디오 자유북한방송의 '황장엽 민주주의 강좌'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이런 황씨에 대해 북측은 1997년 2월 망명 직후부터 보도 매체를 통해 공개적인 신변위협을 계속해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공안 관계 기관을 통해 황씨를 24시간 근접경호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경호팀은 특별한 선발 절차를 거쳐 뽑힌 20여 명으로 꾸려져 있으며 6,7명이 한 조로 24시간 3교대로 황씨를 밀착 경호하고 있다. 1923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황씨는 모스크바대학 철학부에서 수학한 뒤 29세의 나이로 김일성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이어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거쳐 1962년 김일성대 총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북한 권력 서열 13위 까지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망명전 그는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 위원장의 백두산 출생설을 퍼뜨리는 등 후계구도 정립 과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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