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예산안 관련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속도조절 계획을 밝히기로 하면서 정치권에서 본격적인 증세 논쟁이 불붙고 있다. 쟁점은 재정형편에 맞는 복지축소냐,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냐로 요약된다.
그러나 복지공약 후퇴를 막기 위해 '부자감세 철회'를 적극 주장하는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론'이 한계에 처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치권 전반에 증세에 대한 컨센서스가 마련되고 있다. 양극화 해소와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 무작정 복지축소만을 할 수도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인식이다.
양측 모두 '증세 없는 복지확대는 불가능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증세 대상과 폭에 대해서는 이견이 커 올 정기국회 세법 협의과정에서 격돌이 예상된다.
특히 여야 모두 소득 하위 70%에 대해 국민연금과 연계해 월 최대 20만원까지 지급하는 수정안이 박 대통령의 당초 대선공약(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민심이 크게 동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 수혜층인 노년층은 물론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해 나중에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 청장년층까지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5일 기자와 만나 "국민연금 탈퇴 사태 등 국민연금 체계의 근간을 흔들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국민연금 지급액을 기준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었다"며 "세수 추계를 잘 따져 복지의 완급과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재정악화를 감안해 복지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으면서도 탈세추징 강화와 세출 구조조정으로도 안 되면 법인세 비과세ㆍ감면 등 일부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확보를 위해 국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엄청난 국가채무로 인해 연 이자만 20조원이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증세를 선택할지, 복지 수정을 선택할지의 문제"라며 재정위기 문제를 감안한 공약 수정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5년 임기 내내 선거 운동하듯이 국가를 운영하면 대한민국은 분명히 망할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은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는 것"이라며 복지축소 방침을 거들었다.
이는 세수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대로라면 집권 5년간 135조원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 7월까지 세수진도율(목표치 대비 징수실적)은 58.3%에 불과해 정부는 올해 7조~8조원의 세수부족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성장률도 떨어지는 추세여서 실제 세수감소 폭은 더 커져 복지재원 조달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3자 회담에서 처음으로 '국민 공감하에서'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증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기존의 '증세 없는 복지' 입장을 포기하고 26일 복지 속도조절론을 펴게 되면 올 정기국회에서 증세 논의가 불붙을 수밖에 없다. 물론 박 대통령이 3자 회담에서 경제 악영향 우려를 들어 법인세율 상승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법인세 인상이 아니더라도 증세는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조정과 법인세 비과세ㆍ감면 축소나 최저한세율 인상 등 여러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싱크탱크'이던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35%인 최고세율 구간(8,800만~3억원)의 세율을 3%포인트 높이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조세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장인 새누리당의 나성린 의원은 38% 최고세율 구간을 2억원 초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세연구원장 출신의 유일호 의원은 "법인세는 야당의 주장대로 부자감세의 대상은 아니나 대기업에 편중된 비과세ㆍ감면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재원부족은 변명"이라며 '부자감세'를 통해 50조~60조원을 추가로 마련하면 복지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과의 조세 협상창구인 이용섭 의원이 소득세 20% 최고세율 구간을 현행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춰 5년간 3조5,000억원가량의 추가 세수를 올리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은 법인세 과표 500억원 초과 구간의 세율(22%)을 25%로 높이는 한편 대기업의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16%에서 17~18%로 상향하고 이중과세 방지를 제외한 대기업 비과세ㆍ감면 폐지 등 법인세를 많이 걷기 위한 여러 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장병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명박 정부 때 했던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복지공약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