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간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 다툼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장재윤 부장판사)는 9일 현대중공업 등이 현대오일뱅크 대주주인 IPIC 인터내셔널 등을 상대로 낸 '국제중재재판 결과에 대한 강제이행'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2조 5,700여억 원에 달하는 주식을 IPIC로부터 넘겨받게 됐다.
재판부는 "IPIC가 현대오일뱅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현대 중공업 등 계열사등에게 보유지분을 넘기라는 국제상공회의소(ICC,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국제중재재판의 중재판정을 인정하며 이에 따른 강제집행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이번 판결의 가집행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사자와 판정집행으로 인한 효력이 대한민국 관할 내에 있을 뿐 아니라 (국내산업과의) 실질적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당 법원의 관할이 인정된다”며 “국제적 상거래의 문제를 다루는 ICC 중재재판은 구속력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법원에 대등한 권위를 가진 곳이기에 지난해 11월에 나온 해당 판정을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국내에서도 IPIC의 경영권 반납이 강제집행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11월 국제상공회의소의 중재소송에서 승소 판정을 받은 후 8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 IPIC는 '현대오일뱅크 주식 1억7,155만7,695주를 주당 1만5,000원에 현대중공업으로 넘겨주라'는 판정을 받았다.
현대중공업과 IPIC 간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다툼의 시작은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50%이상의 지분을 현대그룹으로부터 넘겨받아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확보한 IPIC는 2억 달러의 우선 배당권을 갖는 대신 2억 달러의 배당 수령이 종료되면 현대중공업에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기회를 주기로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IPIC는 2006년 이후 배당금 수령을 하지 않은 채 경영권을 유지해왔다.
국제중재재판에서는 현대중공업이 IPIC가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살 권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IPIC 측은 국제중재재판의 중재 결과를 사실상 거부하고 이 사건을 국내 재판으로 끌고 왔다. 대부분의 국제 상거래 소송은 국제중재재판의 판정으로 매듭이 지어지지만 당사자가 결과에 불복할 경우 국내 법원의 강제집행 허가가 필요하다.
IPIC측은 선고가 나오자 “판결문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수는 없으나 파산위기에 처한 현대오일뱅크를 회생시키고 10여 년 동안 경영에 기여한 공로가 무시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며 항소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안영수 변호사는 “IPIC가 주식 양도를 집행할 수 없도록 주권소재지를 숨기고 있다”며 “(IPIC측이)항소하더라도 적법한 국내 절차에 따라 경영권을 돌려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