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급등이 정유업계의 과점 때문인지를 알아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3일 지시에 따라 정부가 1주일 만에 대책을 내놓았지만 허점투성이에 거칠고 설익고 어정쩡하다. 대형마트에서 휘발유를 캔에 담아 판매하자는 발상은 코미디라고 일축하더라도 다른 대책 하나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선 삼성토탈을 제5의 휘발유 공급사로 참여시키는 방안은 실효성이 의심된다. SKㆍGS칼텍스 등 4사 과점체제를 깨기 위한 것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물량이 적다. 삼성토탈은 석유제품을 만드는 정유사가 아니다. 나프타를 들여와 각종 화학제품을 만들어내고 그 부산물로 휘발유 같은 석유제품이 나온다. 생산물량도 많지 않아 기존 4사의 1%에도 못 미치니 국내 공급량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상징성 이상의 시장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섞어팔기(혼합판매)의 무제한 허용은 강력한 후속조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상에 가깝다. 무엇보다 주유소들이 값싼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정유사와 주유소 간 독점공급계약 구조를 깨야 한다는 논리는 맞다.
하지만 SK주유소 간판을 달고 100% GS칼텍스 기름을 판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 또한 문제다. SK주유소를 찾아온 고객에게 완전히 다른 회사 제품을 파는 것은 기존 관념하에서는 소비자 기만 행위이다. 껍데기는 현대차인데 모든 부품은 쌍용차인 것과 다를 바 없다. SK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도 이게 SK제품인지 S-OIL 제품인지 알 수가 없다. 가짜휘발유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폴사인제는 독점계약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품질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외국에서도 일반화돼 있는 시스템이다.
특정 정유사 제품을 표시하는 주유소 폴사인제가 존재하는 한 이런 상황은 정유와 주유업계는 물론이고 소비자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정유사 고유의 상표권을 훼손하는 문제, 정유사와 주유소의 사적 계약을 정부가 침해하는 문제도 당연히 제기된다.
섞어팔기 제한을 전면적으로 풀 경우에는 폴사인제를 지금처럼 공급자 브랜드가 아니라 유통업자 브랜드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