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시민공원 화장실 밤엔 노숙자들 '점령'

동파방지 위해 히터가동… '쉼터'로 변해
"추운데 쫓아낼 수도…" 단속 어려움 호소




지난달 30일 자정께 한강시민공원 뚝섬역 인근에서 운동을 하던 직장인 이모(30ㆍ광진구)씨는 볼 일(?) 때문에 급히 주변 공원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기겁을 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노숙자(사진)가 화장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자고 있었던 것. 이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란 가슴을 쓰다듬으며 볼 일도 못 본 채 다른 화장실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한겨울 추위를 피해 한강 주변 공원 이동식 화장실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노숙자가 늘고 있다.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측이 동파 방지를 위해 화장실 내에 히터를 틀어 놓으면서 밤만 되면 화장실 용도가 노숙자들이 편히 자고 가는 쉼터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근무자들은 매서운 강바람에 마냥 노숙자들을 내쫓을 수도 없다며 단속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강시민공원 주변에 설치된 화장실의 형태는 ▦칸막이식 ▦이동식 ▦건물식 등 크게 3가지다. 이 중 노숙자들이 찾는 곳은 화장실 하단에 바퀴가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 이 화장실은 2평 남짓한 바닥 공간이 있어 칸막이식처럼 좁지가 않다. 더구나 겨울철 화장실 동파 방지를 위해 이른바 ‘따스미’라고 불리는 히터가 켜져 있어 실내 온도는 항상 18도 이상으로 유지된다. 화장실 천정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24시간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이용이 뜸한 밤 11시께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노숙자들이 이동식 화장실을 ‘점령’하고 있는 것.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소의 한 관계자는 “공원 내 화장실이 대부분 청소가 잘 돼 있어 날씨가 추워질 때면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세면대에서 늘 깨끗이 씻고 다녀서인지 도심의 노숙자보다 훨씬 깔끔하고 건강해보인다”고 말했다. 뚝섬지구소의 한 관계자도 “정확한 노숙자 인원을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이 곳의 경우 고정적으로 자는 노숙자들이 2~3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P환경의 문모씨는 “화장실을 찾는 노숙자 대부분은 새벽 운동객들을 피해 오전 6시 이전에 화장실을 나가 공원 인근 지하철역으로 이동한다”고 귀띔했다. 권종수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은 “시민들의 화장실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노숙자들이 화장실 이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게 사업소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업소에 따르면 올 겨울 동안 노숙자들의 화장실 이용으로 제기된 시민 민원은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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