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브랜드, 불황을 이긴다] <1> 제일모직 '빈폴'

R&D지원 힘입어 초일류 우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내수업체들은 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신음을 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은 매출이 뒷걸음질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반토막나기도 했다. 이 같은 불황속에서 강한 브랜드로 오히려 매출과 순이익이 늘어나는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불황을 이기는 강한 브랜드의 비결을 시리즈로 알아본다. 유행에 관계없이 일관된 스타일을 고집하는 ‘정통 캐주얼(트레디셔널 캐주얼)’ 분야를 이야기하려면 ‘폴로’라는 브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 폴로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폴로가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나라가 딱 한군데 있는데 바로 제일모직의 ‘빈폴’이 선전하는 우리나라다. ◇빈폴의 성공비결= 제일모직이 빈폴 사업을 시작한 것은 89년. 빈폴은 사업시작 12년만인 2001년 명실상부 폴로를 제치고 1위 브랜드로 우뚝 섰다. 빈폴은 매년 평균 30%씩 성장을 해왔으며 올해에도 20%가량의 신장이 예상되고 있다. 다수의 의류 브랜드가 올해 마이너스 성장세인 점을 감안할 때 괄목할만한 실적이다. 빈폴의 육성 과정은 우리나라 일류 브랜드의 성장사와 맥을 같이한다. 10명 내외의 작은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고비 고비마다 적절한 정책이 뒷받침되며 오늘을 만들었다. 브랜드 하나를 육성하기 위해 지불되는 시간과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맞서기 위해서는 숱한 연구가 필요하고 지리한 기다림도 필수이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빈폴 성장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매출이 많지 않을 때에도 가능성을 보고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책의 일관성에 있다. ◇품질력과 인지도 높인다= 서울올림픽 직후인 89년 제일모직은 국내에도 캐주얼 열풍이 불 것으로 판단하고 캐주얼 일류 브랜드 육성에 돌입했다. 초창기에는 폴로를 벤치마킹하는데 주력했다. 폴로 제품을 뜯고 또 뜯어보며 품질력을 높여가던 빈폴팀은 91년 백화점에 독립 부스를 여는 것으로 자신감을 표명한다. 제일모직은 94년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을 위해 ‘노 세일’ 정책을 선언했다. 옷은 대부분 세일 때 구입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행태를 감안할 때는 당시에는 모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인지도가 구축된 상태에서 소비심리만 잘 자극하면 가격장벽은 충분히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같은 전략으로 마침내 빈폴은 90년대말 일류 브랜드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하게 됐다. ◇패밀리 브랜드로 도약= 빈폴팀은 99년 또 한차례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회사 내 다른 브랜드와 영업, 마케팅 등을 공유하던 체제에서 빈폴팀을 분리, 작지만 독자적인 체계로 운영하며 구성원 내 마인드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에 힘입어 2000년 빈폴은 매출이 전년보다 50%이상 급증하면서 국내 1위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국제화를 염두에 둔 서브 브랜드 개발도 이어졌다. ‘빈폴’ 클래식 단일 브랜드에서 98년 액세서리 분야가 독립된 데 이어 ‘빈폴레이디스’, ‘빈폴골프’, ‘빈폴옴므’(이상 2001년), ‘빈폴진’(2002년)이 잇따라 등장했고 2003년 ‘빈폴 키즈’의 런칭으로 패밀리 화를 마무리했다. 이후 조직내 '소회사' 개념인 '빈폴 컴퍼니'로 독립한 빈폴은 140여명으로 조직을 대폭 늘린 빈폴은 일류 브랜드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진영을 이미 마무리했다. 빈폴은 베이징올림픽 이전까지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장기적으로 캐주얼의 본고장인 유럽, 미국시장 공략도 계획하고 있다. 빈폴 컴퍼니 장을 맡고 있는 원종운 상무는 “빈폴을 명품브랜드로 육성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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