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중동을 '공포의 땅'으로 내몰은 미국

■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 하다
노엄 촘스키ㆍ질베르 아슈카르 대담, 사계절 펴냄
세계적인 진보 중동 전문가들
美의 외교정책 등 심층 토론



'지난 12일 대선을 치른 이란의 보수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어떻게 재선에 성공했을까.'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은 이슬람 근본주의는 언제부터 아랍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70년대 외화를 벌기위해 우리 아버지들이 땀을 흘렸던 '열사(熱砂)의 땅' 중동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등 다소 거리를 둔 외신에 불과했던 중동 소식은 이제 인질로 잡혔던 한국인의 잇딴 죽음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해 터진 9.11 사태 이후 한국에도 퍼지기 시작한 '반이슬람' 정서와 막연한 두려움이 피부에 와 닿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접하는 중동 관련 기사들은 전문적인 논평없이 사건 전달에만 그쳐 내막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특히 복잡하게 얽혀있어 한 두가지 쟁점만으로는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중동 뉴스는 미국의 스펙트럼에 맞춰져 있어 한국의 실정에 맞게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란 더 어렵다. 중동 전문가들로 미국과 유럽을 향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세계적인 진보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정치평론가이자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와 유럽에서 중동 전문가로 활동하는 질베르 아슈카르가 2006년 1월 4일부터 사흘간 대화를 나눴다. 책은 중동 지역의 근본주의 발생 원인과 이라크 전쟁이 중동의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과 현재의 민주주의 상황 그리고 중동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14시간에 걸쳐 진행된 두 사람의 대담을 기록했다. 미 정부 정책 분석에 대한 촘스키의 치밀한 분석과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지식인 아슈카르의 세부적인 중동 정치상황과 민중들의 움직임에 대한 진단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중동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책은 정치적으로 깊숙하게 얽힌 미국의 대중동 정책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또 이스라엘과 중국간에 벌어진 2005년 무기거래 사건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보복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사건까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주요 쟁점들을 심층 토론한다. 1960년대까지 세속적 민족주의(secular nationalism)가 지배적이었던 아랍과 무슬림 세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 의해 보수적 민족주의가 강해졌다는 정황이 파악된다. 저자들은 소련과 맞서 싸운 무자헤딘이나 탈레반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 조직들을 미국이 지지했던 것을 예로 든다. 이슬람 과격 근본주의자에 의해 자행된 테러는 결국 미국이 자양분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짧지않은 분량의 내용을 읽어나가다 보면 왜 중동이 이렇게 뜨겁게 달궈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정황이 모자이크처럼 짜맞춰진다. 또 미국 정부가 중동 만큼이나 위험한 지역이라고 여기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와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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