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아랍세계를 휩쓰는 민주화 운동에서 리비아의 경우처럼 반정부 세력에 대한 명백한 살육행위 때문에 국제사회가 인도적 차원에서 개입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자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단 오만과 바레인은 예외다. 아라비아 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ㆍGulf Cooperation Council)는 지난달 10일 오만과 바레인에 총 200억 달러를 지원하는 '중동판 마셜플랜'에 합의한 데 이어 14일에는 바레인에 1,000여명의 사우디 군(軍)과 UAE 경찰 500명 등 GCC 연합방위군을 급파해 반정부 시위의 강제진압에 일조했다. GCC의 이러한 신속하고 과감한 개입은 바레인 야권과 이란의 극렬한 비난을 불러왔지만 이 기구의 강한 결속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바레인 반정부 시위는 GCC의 군사개입으로 더 이상 동력을 얻지 못하고 사실상 와해됐다. 바레인에서는 수니파 왕정의 권력 독점을 혁파하고 시아파에 대한 차별정책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가 지난달 초부터 격화하면서 사망자도 24명이나 발생했다. 그러나 바레인 정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웃국가에서까지 군과 경찰 병력을 지원받으며 강경 일변도로 시위를 진압했고, 결국 지난달 15일 계엄령 선포와 이튿날 경찰의 강경 진압 이후에는 시위의 명맥이 사실상 끊긴 상태다. GCC는 1979년 이란 호메이니 혁명에 따른 시아파 득세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1981년 창설됐다. 당초 GCC 출범이 이러한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만큼 현 왕정체제의 타파를 외치는 바레인 반정부 시위는 GCC 회원국들에게 좌시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과거 이슬람제국 시절부터 한 나라나 다름 없었던 이들 6개국은 지금도 지배체제(왕정)와 종파(수니파), 언어 등이 동일해 동질감이 매우 강하다. 중동 전문가인 크리스틴 다이완 아메리칸 국제관계대학 교수는 지난달 21일자 CNN 기고문에서 "GCC의 군사개입 결정은 특히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외국군대의 주둔은 바레인 내 시아파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하고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것"이라며 "결국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아파가 더욱 강력하게 뭉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로 30년을 맞은 GCC는 중동사태를 계기로 경제통합까지 이끌어내 EU 처럼 강력한 '걸프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맹주인 사우디가 선봉에 서고 있다. GCC는 그 동안 관세동맹과 공동시장 출범, 연합방위군 창설 등 통합의 속도를 내왔지만 현재 통화 공동체 창설이 벽에 부딪히면서 통합논의가 사실상 교착상태이다. 왕정체제 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은 공유하지만 흔들리는 유로존처럼 역내 경제력 격차가 크고 경제통합 주도권을 둘러싼 반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 영국 및 미국 대사를 지낸 투르키 알-파이잘 사우디 왕자는 최근 한 포럼에서 "(민주화 요구 등) 외부영향을 견디려면 GCC가 유럽연합(EU)와 같은 강력한 통합기구로 격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올해로 30년을 맞은 GCC의 통합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최대 관건인 역내통화 '칼리지(Khaleeji)' 도입 등을 둘러싸고 회원국간의 반목이 상존해 있어 통합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우디는 경제규모 1조 달러 이상(올해 추정치)의 GCC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통화동맹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현재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UAE와 오만이 조속히 입장을 바꾸길 촉구하고 있다. 사우디와 함께 GCC의 두 축인 UAE는 지난 2009년 사우디 리야드가 향후 걸프중앙은행의 소재지로 선정되자 불만을 품고 당해 발효된 통화협정에서 갑작스럽게 발을 뺐다. 두 나라는 인근 해역에서 해상 충돌을 벌이는 등 자존심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FT는 전문가들을 인용, "현 상태에선 통화동맹이 2015년쯤, 일러야 2013년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일 GCC의 5대 사무총장에 취임한 알둘라티프 빈 라쉬드 알자야니는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통화는 조만간 도입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EU의 27개국 회원국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에 모두 가입하지는 않은 점을 거론하며 "(GCC 통합강화를 위한) 공동의 행동을 취하는 과정에서 개별 회원국 별로 속도와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