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순택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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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동희 ''재생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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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아 ''금기는 숨겨진 욕망을 자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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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일 ''이미 알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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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지금 사회는 이면에 모순과 역설이 존재하는 부조리로 읽혔나 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선정된 작가들은 전혀 다른 매체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상에서 발견한 사회 부조리(구동희),읽지 못하게 해체한 문자조각(김신일), 권능의 무능한 이면(노순택), 고통에서 끄집어낸 아름다움(장지아) 등 '모순과 역설'의 공통 경향을 보여준다. 1995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선정했고 2012년부터는 SBS문화재단과 공동주최해 역량 있는 현대미술가를 지원하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5일 개막해 11월 9일까지 과천관에서 열린다. 현대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들 후보작가 중 최종 1인은 9월 중에 발표된다.
분단 현실을 주제로 작업해 온 사진작가 노순택은 지난 10여 년의 작품 수백 점과 함께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라는 제목의 신작 시리즈를 내놓았다. '무능한 풍경'이란 권력을 가진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을 지적하고, '젊은 뱀'은 다른 매체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뜨겁고 교활한 사진의 속성을 뜻한다. '사진'이 전능한 눈으로 객관적 진실을 보여줄 것 같지만 실상 표피적이고 의도적이며 프레임을 만들어 영악한 시선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 사진기자 출신인 작가가 사진 매체에 대한 자기반성적 시각을 담았기에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정도다. 역사적인 국가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폰카' 찍기에 여념 없는 장면은 우리네 자화상이다.
사회적 금기를 다루는 장지아 작가는 전시장 문앞에 '19금' 딱지를 커다랗게 붙이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켰다. 전라 여성의 몸이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서서 오줌 누기', '앉아있는 어린 소녀' 등의 작품 때문이다. 작가는 신작으로 흰 천이 드리운 공간에 중국에서 들여온 1950년대 대형 수레바퀴 12개를 설치했다. 바퀴가 한때 고문도구로 사용됐음에 착안한 작가는 바퀴 가장자리에 깃털을 매달고 그 위에 뚫린 안장을 놓고 여성을 위에 앉혔다. 바퀴 위의 여성은 바퀴를 돌리는 노동과 깃털이 스치는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겪게 된다. 여성들은 노동요인 충북 음성 디딜방아타령을 성가사용이 금지된 프리지안 음계로 부르며 퇴폐적 성소(聖所)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진부한 일상에 우연한 상황을 개입시켜 뜻밖의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구동희 작가는 '재생길'이라는 대형 건축형 설치작품 하나로 전시장 전체를 꽉 채웠다. 그는 서울대공원의 롤러코스터에 대한 기억과 최근의 각종 사건사고를 버무려 '뫼비우스의 띠' 형태를 만들었다. 철골 모듈 36개가 사용돼 길이 75m의 270도 회전 구조물을 이루는 작품은 붉은 갈색의 틀과 형광 연두색의 천이 사용돼 '색'에서부터 초현실적 분위기를 풍긴다. 관객이 신발을 벗고 직접 지나다니며 경험해야 감상이 완성되는데, 안과 밖이 뒤섞인 공간을 체험하다 보면 머릿속이 멍하다가 아찔해지는 몽환과 각성의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재미있다'부터 '부조리한 삶을 풍자했다'까지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념들, 특히 관념에 기반 한 '문자'를 해체시켜 온 작가 김신일은 '이미 알고 있는'이라는 제목 아래 마음(mind),믿음(belief),이념(ism)을 펼쳐보인다. 자연·바위·도시를 촬영한 이미지를 마구 잘라 단어를 만들고 이를 다시 포개 읽을 수 없게 전시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문자와 언어를 통한 '범주화'가 오히려 실제와의 단절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하며 "읽을 수 없을 때 오히려 본질을 더 잘 알 수 있기도 한다"고 말한다. 관객이 앞에 서면 심장박동과 맥박 소리를 섞은 음향이 거울을 뒤흔들고 관객의 거울 속 모습까지 뿌옇게 흐려놓는 작품이나 언어적 설명 없이 직관으로 파악하게 이끄는 영상작품 '42,000초 안에서의 대화' 등이 흥미롭다. /과천=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