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여건 악화땐 올 실적 최악 우려"

"1분기 바닥" 공언 수출간판기업도 수정
하반기 최대경영변수 67%가 환율 꼽아
신규채용 규모는 "전년수준·확대" 89%


“6시간 넘게 환율대책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다. 이보다 나쁠 순 없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S사 Y부사장은 마라톤회의에 지친 듯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요즘 환율변동으로 경영실적 관리가 힘겨워지자 툭하면 밤잠을 설친다고 실토했다. 환율하락 폭이 당초 예상을 이미 벗어난데다 헤지 등 일상적인 수준만으로는 더이상 수익성 악화를 막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제가 국내 대기업 46개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경영설문조사 결과 환율하락ㆍ고유가 등의 피해가 대기업이라고 해서 비껴간 것이 아니란 게 확인됐다. 이미 상당수의 CEO들이 하반기 경영계획을 대폭 수정하는 등 비상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CEO 39% “궤도수정”=기업들의 한해 경영계획은 매년 초 확정돼 웬만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수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이 같은 원칙을 지킬 여유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번 조사 결과 CEO 10명 중 4명이 “경영목표를 수정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는 환율피해가 중소기업에 국한된 문제로 여겨졌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주우식 삼성전자 IR팀장(전무)은 “LCD와 휴대폰 등 주력제품군이 2ㆍ4분기에 바닥을 찍었다”며 “3ㆍ4분기에는 빠르게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화강세가 지속되고 고유가, 원자재 가격 인상 등 경영변수가 현재보다 더욱 악화될 경우 이 같은 전망도 다시 한번 궤도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탄탄한 사업포트폴리오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평가받던 삼성전자ㆍLG전자 등 대표적인 대기업들은 지난 1ㆍ4분기 기업설명회(IR)에서 이구동성으로 “1ㆍ4분기가 (실적) 바닥이 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휴대폰ㆍLCD 등 주력제품의 침체로 경영예측을 잇따라 고쳐 잡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을 당초 목표액보다 20% 가까이 축소시키는 등 하반기 경영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나섰다. 대기업이 이 정도라면 중견 중소기업의 형편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시장 전문가들은 “하반기 경영여건이 악화될 경우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올 경영목표 달성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최악의 경영성적’을 우려하고 있다. ◇환율공포 계속된다=CEO 88%는 “상반기 환율충격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경영상 15% 이상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도 6.5%나 됐다. CEO들은 이 같은 ‘환율공포’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반기 경영변수를 묻는 질문에 CEO 67.3%가 “환율”이라고 답해 경영활동에 적잖은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하반기 환율전망에 대해 CEO 56%는 “9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환율이 “940~950원 수준에서 횡보할 것”이라는 응답 43%까지 합치면 CEO 전원이 원화강세 기조가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CEO들은 하반기 적정 환율로 “960~999원 사이(50%)”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하지만 CEO들이 예상하는 적정 환율과 하반기 환율전망과는 30~80원의 격차가 발생, 경영활동에 큰 장애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2,000억원의 이익이 사라진다. CEO들은 환율하락ㆍ고유가 등 경영환경 악화에 대비해 “강력한 생산원가 절감에 나설 것”(60.8%)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R&D)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21.7%), 신사업 진출 및 해외 생산기지 확대(15.2%), 구조조정 등 조직혁신(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신규채용은 한다=경영여건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지만 기업들은 하반기 신규채용 규모는 전년과 비슷하게 가져갈 전망이다. 하반기 신규채용 규모와 관련해서는 CEO 67.3%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전년보다 10~20% 확대하겠다”는 응답도 21.6%나 됐다. 이는 경영상황은 어렵지만 우수인재 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차원과 함께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상생경영 등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삼성ㆍLGㆍ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조만간 하반기 신규채용을 위한 국내외 설명회를 갖는 등 준비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경영악화로 “채용계획을 포기했다”는 응답도 8.6%나 됐다. 하반기 경영변수와 관련,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두바이유 기준) 이상 폭등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CEO 54.3%는 하반기 유가전망과 관련해 “70~80달러선”이라고 답했고 “65~70달러선”은 34.7%로 조사됐다. 80달러 이상 폭등할 것이라고 대답한 CEO는 6.5%에 그쳤다. ‘상반기 유가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냐’는 질문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26.0%나 됐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