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열분리제 안된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 공약 사항인 금융회사계열분리청구제(이하 계열분리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재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력과 총수가 2% 남짓한 지분율만 가지고 전 계열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더욱 강력한 대기업 규제를 가지고 이러한 한국적인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계열분리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할까? 필자는 현재 상황에서 계열분리제 도입은 불필요한 껍데기 규제가 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우선, 공정위가 계열분리제의 도입 근거로 삼는 것은 제2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대기업집단 소속 생보사의 자산비중이 생보가 98년 42%였던 것이 2002년에는 52%로, 손보사가 45%에서 56%로 각각 증가한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험시장에서 재벌계 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이 늘어난 것은 부실보험사의 퇴출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지 신규 투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있었던 리젠트 화재의 계약이전에 있어서도 대기업계열 손보사들은 마지못해 참여했었다.졓肩린?정부에 협조해서 계약이전을 받아 자산규모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비를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공정위가 제시한 재벌계 보험사의 자산규모 증가는 생산성 격차와 계약이전에 의한 것이지 신규자본 참여에 의해 늘어난 것이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계열분리제 도입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우리 금융기관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더욱 대형화해야 하는데, 신규 자본 투입이 아닌 자산 증가에 대해서도 규제의 근거로 삼는다면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재벌계열 금융기관의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행위가 늘어나는 추세라면 계열분리청구권이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자산규모가 늘고 있다고 도입한다는 것은 근거가 미약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2000년이후 부당내부거래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는 공정위가 그간의 시장 개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본 위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재벌계 금융기관의 계열사 부당지원 금액 적발 실적은 99년 13조 8,209억원, 2000년 1조 8,739억원, 2001년 7,972억원, 2002년 441억원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부당지원 금액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를 굳이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 의문시 된다. 이처럼 부당 지원 행위가 줄어드는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 실시한 여러 가지 재벌 개혁 조치들이 성과를 내고 있고, 시장의 감시 기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공정위는 금감원이 적발한 부당지원금액은 일상적인 감독과정에서 적발된 것으로 우회지원 등 지능적이고 은밀한 방법을 통한 부당지원금액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 측이 제시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적발된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 또한 금융기관의 위규행위를 적발하는 능력은 금감원이 더욱 탁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정위도 인정하리라 본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금감원 검사에서 지능적인 우회지원이 적발되지 않았다고 해도, 부당지원 적발규모가 4년전에 비해 0.3%로 급감한 추세 자체가 변할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공정위가 직접 조사를 하더라도 재벌계열 금융사의 부당지원행위는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이 확인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적 지배구조의 폐해를 막기 위해 금융계열사 보유 지분의 의결권 제한은 필요하지만,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은 이 법에 저촉될 사례가 발생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만 갖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 규제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선행과제이며, 재벌 계열사의 상장을 유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참여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실현을 국정운영 중점 추진 사항 중 첫 번째로 내걸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법 위반 사실이 추세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고 해서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은 새 정부의 `예측가능성 제고`, `시장자율기능에 의한 개혁` 등의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기조에 부합되도록 규제 신설 등의 `이벤트성 개혁`을 지양하고 시장의 감시기능이 강화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조재환(국회의원ㆍ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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