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火魔)가 닥친 그 날 새벽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니 정말 막막하더군요.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더부살이로 영업 중이지요. 가게가 타버렸다고 손까지 놓으면 되겠습니까. 병술년 새해의 해는 새롭게 희망을 안고 떠오를 것입니다.” 지난 1일 화재로 4층 상가 대부분이 전소되는 엄청난 타격을 입은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동문시장. 한달 여 만에 찾아간 상가는 그을린 일부 외부 벽 등을 제외하곤 화마의 흉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장 피해가 컸던 4층으로 향하는 문은 여전히 굳게 잠겨 있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계단에는 먼지와 그을음이 가득했고,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남아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화마의 상처를 입은‘4층 상인들’을 시장에서 만나는 건 뜻밖에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점포가 모두 전소된 상황인데도 30여 점포 중 16개의 점포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3층 상인들의 양해 아래 ‘더부살이’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상가를 창고로 사용했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전 상인이 ‘백의종군’ 자세로 영업 중이었다. “상가 전체가 다시 정상 영업에 들어간 일주일쯤 뒤부터 바로 손님을 맞았지요. 맥 놓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단골들까지 끊기는 건 순식간입니다.” 4층에서 영업을 해 왔던 삼미고무의 강영기(63) 씨는 “그을음으로 얼룩진 신발 하나하나를 다 닦아내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동문시장에서 화재가 난 시점은 겨울 초입으로 점포마다 물건을 쟁여놓고 본격적인 겨울 제품 판매에 나선 상태라 피해가 더 컸다. 각 점포 별로 피해 규모가 2,000~3,000만원에 달한데다 복구 등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겨울 장사’는 물 건너가 있었다. 그러나 피해가 없었던 상가라 해도 ‘혹한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이 곳 상인들의 말이다. 지표 흐름이나 백화점, 할인점 등의 매출은 날로 회복되고 있지만 재래시장까지는 온풍이 채 미치지 않았다는 것. 가장 먼저 얼어붙고 가장 나중에 회복되는 게 시장의 생리이기도 하지만 유통 흐름 자체가 대형 할인점과 중국산 위주로 변하고 있어 영업력에서나 가격 면에서 뒤지기 일쑤라 했다. 20여년 간 신발 영업을 했다는 최복동(65)씨도 “내리 3년 간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았던 탓에 방한화 주문을 많이 하지 않았고 뒤늦게 확보하려 했을 때에는 이미 대형 점포에 뒤져 있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상인은 “상가 현대화를 위해 리모델링을 계획 중이었지만 정부에서 지원 받을 예정이었던 예산이 이번 화재 복구비용으로 들어가게 돼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분지로 점포 명을 급조, 이름을 내걸거나 아예 이름도 없이 영업 중인 3층 곳곳 매장에서는 상인들의 ‘무언의 희망’이 읽혀져 있었다. “영업 시간 중에 화재가 나 아들, 딸 같은 물건을 두고 나와야 하는 심정은 참담했습니다.대출 가능금액도 터무니 없이 적다 보니 먼저 힘 들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소매 상인들을 확보하기 위해 발로 뛸 것입니다.” 새벽 시장을 방문한 기자에게 ‘아침은 먹어야 한다’고 굳이 밥 한 술을 지워주던 서울고무상사의 김갑희(53)씨의 말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재래시장이 내리막으로 접어든 것은 대세이자 한 흐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 평생 배운 게 이 일인데 국내 최대 규모 신발상가의 자존심을 걸고 라도 손님이 올 때까지는 매일 문을 열 것 입니다.” 이 곳 상인 모든 이들의 새해 소망도 비슷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 하는 한 상인은“지난 외환위기 때도 대형 납품업체의 연속적인 부도로 전 재산을 날린 경험이 있다”면서도 “알거지가 된 나를 시장이 이만큼 일으켜 줬는데 여기서 주춤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불 난 뒤엔 ‘대박’ 난다고 하던데 설마 올해만큼 나쁜 일이야 있겠느냐”라고 담담히 말하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상가 밖으로 빠져 나오려니 어느새 저만큼 동이 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