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수평적인 네트워크 사회로 한국이 능한 수직적인 효율화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기술에 대한 융합, 상거래 관행, 비즈니스 모델 등 한국이 취약한 분야에서 수평적인 협업관계가 형성되지 못할 경우 위기를 겪을 우려가 큽니다." 국내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로 불리는 안철수(사진) KAIST 석좌교수 겸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은 29일 우리나라의 갑을 관계 문화에 대해 일침을 놓으면서 앞으로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로 변화해야 미래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대기업 위주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보호되는 형태로 애플 아이폰 신드롬도 이러한 구조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어느 나라건 기득권이 보호되는 혜택들이 있지만 과도할 경우 스스로 경쟁력을 상실함으로써 기득권에도 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아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우리 산업구조의 개선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미래 한국경제의 발전방향을 과감히 제시했다. /대담=안의식 경제부장 miracle@sed.co.kr -먼저 미래 산업 발전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애플의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흐름처럼 산업들이 일종의 거대한 표준을 장악하는 플랫폼화가 되고 있습니다. 단품 하나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애플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들이 소프트웨어(SW)•콘텐츠 같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도와주는 형태지만 실제 큰 이익은 결국 플랫폼을 장악하는 곳에서 가져가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을 시도할 분야가 없을지 대기업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10년, 20년 한국경제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 도요타 사태는 어느 순간 방심해서 품질을 등한시하고 경비절감을 위해 하청업체를 쥐어짜다 보니 나오게 된 것입니다. 경영할 때 추구하는 목표 2가지인 비용절감과 품질향상을 흑백논리로 접근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흑백논리가 너무 지나칩니다. 특정 이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는 것이죠. 더불어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개인적인 실수라기보다 시스템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진국을 보면 이 경우에 시스템 개선을 통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우리는 담당자 문책으로 끝내니 계속 반복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융합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성, 경제개발 패턴 등을 고려해보면 한국사람에게 융합은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우리 사회로 보면 양쪽 분야 업무가 능숙한 사람이 조직에 포함돼 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조직 관리자가 그런 쪽에 인사이트(통찰력)가 있어야겠죠. 융합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 대학•정부 등 곳곳에서 실수가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융합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장점을 최대한 인정해주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관계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또 모래알을 상자 속에 넣어두기만 해서는 벽돌이 되지 않는 것처럼 모래알들을 연결시켜주는 접착제(글루)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의 의미가 큰데요. 이를 포기한다는 것, 과연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아이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외부충격들이 한국사회에 가해지고 있다 보니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내부에서 고민하고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결국은 외부 충격이 도화선이 되는데 그 계기를 잘 살려 빨리 앞서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이러한 경쟁문화가 문제가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 꼭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인텔의 전 최고경영자(CEO) 앤디 그로브가 "진짜 경쟁을 알려면 한국 기업과 경쟁하라"고 하기도 했었죠. 다만 이전에는 개인플레이로 진행됐다면 요즘에는 경쟁할 때도 연합군을 만들어 하는 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수평적인 연합군이 아니라 나보다 밑에 있는 하청업체로만 보는 시각은 문제입니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황창규 전략기획단장을 임명해 사업을 재조정하고 방향성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전반적으로 국가의 R&D정책은 시장에서 당장 기업들이 하는 단기적인 과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 명제입니다. 또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핵심역량에 해당되지만 실제로 잘 안 되는 부분들, 예를 들어 SW 분야라거나 그런 쪽으로 발굴해야겠죠. 대기업이 잘하는 분야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벤처기업의 실패율이 높은 편입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먼저 중소ㆍ벤처기업 경영자의 실력 자체가 아직 부족한 점이 큽니다. 더불어 이들을 도와주는 산업지원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역시도 굉장히 취약합니다. 예를 들면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자금 문제를 도와주는 금융권, 아웃소싱업체, 정부 정책 등이 한결같이 부족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중소ㆍ벤처기업들의 이익을 뺏어가는 불공정한 산업구조와 거래관행의 문제입니다. 사실 굉장히 오래된 문제인데 심지어 정부 조달에서도 불공정 거래관행 같은 구조를 악용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대기업에 수주를 주고, 대기업이 알아서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행태가 고쳐져야 합니다. -정부에서 상생을 많이 강조하고 있지 않나요. ▦너무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중소 벤처기업이 많이 생겨나게 하는 데 자금을 투여하고는 있지만 더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불공정 거래관행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수요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즉 기업은 많이 만들어지는데 살아남을 터전이 없어 다 말라 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정부는 최근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1인 창조기업이 활발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벤처기업은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창업하기보다 두 사람 이상의 파트너가 창업하는 게 성공확률이 더 높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으니 서로 보완해서 한다는 측면입니다. 그러다 보면 1인 창조기업은 실패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개개인이 경영자로서 자질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닦아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구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바이오 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등 대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인수합병(M&A)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M&A는 제대로 이뤄지면 양쪽 다 이익이 됩니다. 그게 바로 실리콘밸리의 모델이죠. 시스코•MS•구글 모두 자기 핵심기술로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면 끊임없이 M&A를 통해 성장합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많은 가능성에 다 진출할 수 없으니 이를 통해 선순환 구조로 들어가는 것이죠. 검증된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성공확률이 높아지고 성공한 벤처는 정당한 평가를 받고 매각한 뒤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는 거래를 하다가 나중에는 기술까지도 막무가내로 빼앗아버리는 모델이죠. -평소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자주 지적을 하셨습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이 잘 되도록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 했을 때 어떻게 했느냐가 핵심 경쟁력입니다. 100개 중 99개가 실패하는데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도덕적이고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으면 실패가 자산화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보면 한번 실패하면 모든 잘못을 그 사람에게 지우니 다시 도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법대•의대만 가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구조상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인센티브 시스템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약력 ▦1962년 부산 ▦서울대 의대 학사ㆍ석사ㆍ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공학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및 최고학습책임자(CLO)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정문술 석좌교수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비상임이사
다른 일 아직 생각없어" "다른 일이요? 아직까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존확률과 흥망성쇠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KAIST 정문술 석좌교수 겸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의 이력서를 보면 몇 쪽이 훌쩍 넘어간다. 의사와 의대교수, 컴퓨터(PC) 백신 개발자,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KAIST 교수 외에도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포스코 이사회 의장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화려하다는 수식어가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 KAIST에 둥지를 튼 지 2년 반. 현장에서 뛰어달라는 요청도 많지만 안 교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제가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하거든요. 의사로 시작해서 의대 교수까지, PC 프로그래머를 할 때도 세계에서 몇 번째로 PC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안철수연구소도 창업부터 시작해서 상장까지 시켰죠. 교수도 어느 정도까지 목표를 이루기 전에 중간에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강의나 연구는 이제 나름대로 꽤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연구 쪽 목표는 무엇일까. 안 교수는 "저는 현장에 있다 왔기 때문에 현장에 도움이 될 만한 시사점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숙명이 연도별로 어떻게 바뀌는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고용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지 등이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기업의 생존확률과 흥망성쇠에 대한 안 교수의 연구는 통계청과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통계청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수조사 데이터로 연구하는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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