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제국 파고들면 20세기 서구 예술과 사상이…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 윌리엄 존스턴 지음, 글항아리 펴냄1848~1938 제국의 문화적업적 추적클림트·말러·슐릭·루카치·슘페터등정신적 지주역할 70명의 지성들 소개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내 주변에는 향락의 민족이 반짝이는 눈으로 살고 있으니, 그 곳은 늘 휴일이요, 벽난로에는 구이 꼬챙이가 항상 돌고 있구나." 독일의 시인 프레드리히 실러는 그의 유명한 풍자시 '그곳 도나우…'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이렇게 노래한다.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선조 정도로 알려져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 중동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한때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 했던 유럽 최대의 왕가였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이자 제국의 정신이 깃든 오스트리아 빈은 19세 말 예술의 향유와 탐미주의로 가득 찼다. 제국의 황혼기를 관통했던 분위기는'비더마이어(Biedermeier)'로 요약된다. 문학계에서'초기 사실주의'라 불리는 비더마이어는 미적 쾌락과 결부된 정치적 체념에 가톨릭의 정신이 포개진 개념이다. 비더마이어 문화는 왕조의 몰락과 산업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었던 사상가들에게 시 쓰기나 그림 그리기 그리고 음악에 심취하게 하며 향락의 길로 이끌었다. 빈의 카페에는 남녀가 모여 책을 읽고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극장과 콘서트홀에는 화려한 공연들로 시끌벅적했다. 비록 지금은 몰락한 왕조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 빈에는 파격적인 성(性)을 표현해 논란이 됐던 화가 에곤 쉴레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에로틱한 심연에 빠져있었으며, 구스타프 말러가 죽음을 동경하며'지상의 노래'를 완성했다. 서구의 20세기 경제와 정치 분야의 걸출한 사상가들 중에도 합스부르크 제국 출신이 많다. 슐릭과 노이라이트는 논리 실증주의 철학을 이곳에서 펼쳤으며, 부버, 루카치 등 법학자들을 비롯해 카를 멩거, 슘페터 등 경제학자들도 이곳 합스부르크에서 사상의 기틀을 만들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창의력을 키워갔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상과 예술과 철학을 꽃피웠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성들은 경제학ㆍ심리학ㆍ윤리학ㆍ현상학 등으로 미국과 유럽으로 파급되면서 세계인의 정체성에 관한 지식을 형성하고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권에선 독일인의 민족주의적 의미를 뒷받침하는 보조학문으로 평가절하됐다. 미국 메사추세츠대학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던 일리엄 존스턴 박사는 영미권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사상과 문화를 파고들었다. 저자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형성됐던 1848년부터 1938년까지 황혼기를 조망하며 오스트리아의 정신적ㆍ문화적 업적을 추적한다. 책은 20세기 서구문명의 정신적인 지축을 이뤘던 정치적 사상가와 예술가 등 70명의 정신적ㆍ문화적 삶을 추적하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신사와 문화사를 소개한다. 저자는 합스부르크 제국 출신의 거장들의 창조적 사고를 도왔던 교육체계와 정치ㆍ경제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이곳 출신으로 근현대 서구 문화의 틀을 만들었던 거목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당시의 형성된 학파와 예술과 문학사조 등을 소개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배출한 지성들. 왼쪽 위부터 칼 레너, 에른스트 마흐, 루드비히 볼츠만, 게오르기 루카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구스타프 말러, 오토 바그너, 조세프 슘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