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해외석학에 듣는다] 1.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편집장
입력 2003.12.31 00:00:00
수정
2003.12.31 00:00:00
“한국은 세계에서 10위의 국가에 들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 적극 동참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이라크 파병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당장엔 붕괴되지 않겠지만, 한국은 북한이 언젠가 붕괴될 것을 전제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국제정치 및 경제 분야의 평론가로서 활약하고 있는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편집장은 한반도 문제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중국의 지난 수십년간 경제 발전에 경의를 표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경쟁하는 강대국으로 일어서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판단했다. 또 이라크는 곧 안정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스위크 편집장실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체포된 후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봅니까.
▲이라크에는 많은 도전이 다가올 것입니다. 아직 민간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안정이 정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아주 좁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이라크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중부지역에 밀집해 있는 수니파조차 그들을 지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항세력들도 후세인 정권의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수 세력이기 때문에 미국과 연합군은 수니파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항세력을 제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이라크인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라크에 안정이 찾아올 것입니다.
-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 수천명의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내에는 파병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합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한국 내에서 파병 찬반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정착됐다는 증거입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재건 사업을 국제적인 참여를 바라고 있고, 이 문제가 유엔을 통해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10위권의 부유한 나라이고, 아시아에서는 3위의 나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대국들이 하는 일에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이라는 그늘에 놓여 있기 때문에 대외문제에 소극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위협당하는데 외국에 보낼 군대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계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남북한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의 관계는 아닙니다. 따라서 거친 세계 현실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적어도 잘못된 결정은 아닙니다.
- 부시 행정부가 전쟁에 반대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조치가 국제 협력관계를 저해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부시 정부는 처음부터 국제적 협조를 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행한 일이지요. 미국은 이라크 재건을 위해 가능한 모든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고, 많은 나라들을 포용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부시 정부는 국제화를 원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개념으로 국제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모든 희생을 치렀으니, 우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는 것입니다. 왜 다른 나라가 간섭하느냐는 것이지요.
부시 행정부는 반전국가에 재건사업 참여를 못하게 해놓고 동시에 그 나라에 대해 이라크 부채를 탕감해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수백억 달러나 되는 돈을 탕감하라면서 수십억 달러의 재건사업에 참여치 못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라크 자선사업에는 국제화를 주장하면서 간섭은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이라크처럼 `악의 축` 국가로 규정했고, 북한도 핵 개발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북한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기자를 가리키며) 가장 큰 차이점은 당신(한국)입니다. 북한은 한국을 인질로 잡고 있고, 미국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 제가 인질이라구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초점은 한국이지요. 지금도 북한은 20~30분 내에 군사 공격을 감행해 대형 재난을 일으킬 힘이 있기 때문에 부시 정부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는 악의 축 국가들 사이에 어떤 커넥션이 있는 줄 알고 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악의 나라입니다. 당신의 형제 누이들은 아주 고통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잘못되면 감옥에 가야하고 초근목피를 먹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의 주장을 따르지 않더라도 북한은 도덕적인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합니다.
- 한국은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돼 엄청난 통일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이 곧 붕괴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간 안으로 무너질 것입니다. 상황이 좋아지고, 변화의 과정이 진행될 경우 사람들의 기대가 커지고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상유지가 되고,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혁명적으로 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고, 한국은 북한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곧 북한이 붕괴될 것으로 보지 않지만, 언젠가 북한이 붕괴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입니다. 언젠가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한국은 통일에 관해 연구하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 9ㆍ11 테러 이후 미국 내에서 제국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국주의라면, 로마나 영국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까.
▲미국이 국제사회에 강대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제국주의는 아닙니다. 미국은 동아시아와 중동, 라틴아메리카에 높은 차원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제국주의는 아닙니다. 미국은 과거 제국주의와 달리 영토나 주민에 대한 통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과거 소련도 이런 것들을 추구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미국과 과거 제국주의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하고 즉 거칠고 공격적이라는 둥 나쁜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 소련이나 북한처럼 주변 국가를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여러가지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제국주의는 아닙니다. 미국은 이런 차이점을 견지할 것이고, 그래서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중국이 지난 몇십년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습니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에 경쟁하는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중국의 경제적 성공은 이례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경제개발에 성공했고, 더 많은 국민들이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지요.
첫째 중국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국민 소득은 매우 낮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멉니다.
둘째 경제가 발전하면서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선 지역적으로 빨리 성장한 지역과 지체한 지역 사이에 차이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 정치적으로 갈등 요인이 커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시장 경제를 조화하는 것이 앞으로도 큰 숙제입니다.
끝으로 중국이 반드시 미국에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협조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입니다. 유럽과 러시아도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습니까.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은 글로벌 파워로서 아시아에 영향력으로 발휘하면서 균형점을 찾을 것입니다.
- 저서 `자유의 미래`에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는데요. 그 뜻이 무엇입니까.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선거는 치르지만, 인권을 보장하거나 경제적 자유와 직결되는 사유재산을 보호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억압이 존재하지요. 이런 현상은 베네수엘라, 러시아, 벨라루스, 이란으로 확대되고 있다는데 놀랐습니다. 종종 폭력을 동원해서 소수 인종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두가지 요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선거이며, 둘째는 인권보호와 경제적 자유입니다. 둘다 보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며, 그중 하나 즉 선거만 치르고, 선거 후에 다른 요소를 억누르는 것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한국도 `비자유주의적` 과정을 거쳤습니다만.
▲동아시아는 재미있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50~60년대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군사정권이 들어서 민주주의를 억제하고 일당 독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군사정부는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사회를 개방했습니다. 그들이 일단 경제를 개방하면서 법률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제 개혁은 중산층을 탄생시켰고, 중산층은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권위주의 정부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아주 세련된 민주주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엔 민주주의가 늦었지만, 지금은 아주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에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합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가 정착할 사회의 폭넓은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법치가 이뤄지고 경제 개혁이 단행된 후에 정치 개혁이 이뤄졌습니다. 중국이 지금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는 정치 개혁을 먼저 하고,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길 희망하지만,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주 고통스런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확보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누구
전세계에 350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뉴스위크 편집장. 28세의 젊은 나이에 국제관계 전문잡지인 `포린 어페어스`의 편집장을 맡았다. 중동문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문제에 정통하며, 이슬람 문제에 관한한 미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에스콰이어` 잡지는 그를 `21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21인`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ABC, NBC, CBS 방송, 영국 BBC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에 컬럼을 게제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난해 발간한 `자유의 미래` ,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평가한 `부에서 권력으로`, `미국의 충돌` 등이 있다.
인디아에서 출생해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후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 부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올해 나이 40세.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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