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누린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원 없이 골프를 쳤던 일일 것이다. 아이오와시티에서 살 때 주말 이틀은 최소 18홀, 평일에는 항상 퇴근 후 한여름 13홀, 봄 가을 9홀을 돌고 집에 귀가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행도 얻었으니 그것은 내가 쳐도 쳐도 79타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골프 둔재`임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100타나 90타를 깨기 위해 피땀 흘리는 분들이 들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나 코스에서 살고도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의 괴로움 역시 그에 못지않은 것이다. 수년 만에 생애 베스트 스코어를 `갈아치울 뻔했던` 기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일요일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친한 친구가 딱 3명밖에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늘 함께하는 멤버들과 또다시 `단골`인 핑크바인이라는 골프코스로 나갔다. 4명 모두 평균 스코어 80대 초반 정도였기 때문에 80대 초반을 치면 승리이고 80대 중반을 치면 저녁을 사야 했기에 모두들 심혈을 기울이며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날 따라 나는 신들린 듯 빨랫줄 같은 드라이버 샷과 핀에 착착 붙는 아이언 샷, 홀을 찾아가는 퍼팅을 자랑하며 전반 9홀을 2오버로 마쳤다. 10번홀 파, 파5의 11번홀 버디로 1오버, 그리고 거의 직각으로 꺾여 그린이 잘 보이지 않는 12번홀(파4)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이글을 잡아 중간 스코어는 1언더!
그러나 `일생일대의 대기록이 탄생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아일랜드 그린의 13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양파`를 까더니 이후 5홀 동안 5타를 더 잃어 최종 스코어는 7오버 79타! 골프는 진정 마인드 게임이라는 점과 나 자신이 `골프 둔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날이었고 이후로도 나는 79타 이하를 단 한번도 쳐보지 못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