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5년 후 국내증시에만 무려 80조원가량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증시 활성화를 뒷받침할 ‘수급지킴이’ 역할은 물론 일부 헤지펀드 등의 특정산업 인수합병(M&A) 시도에 대한 경영권 방어기능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규모로 ‘연금이 사는 주식’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 따른 투자자들의 추격매수 붐 등 시장혼선 문제점은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증시 안전판 역할 기대=29일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산의 11%가량을 국내주식 매수에 썼던 국민연금은 오는 2012년께 20% 이상으로 투자비중을 확대한다. 2012년 말 기금 적립액이 398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5년 후에는 70조~80조원의 자금이 국내증시로 쏟아진다는 얘기다. 이 같은 대규모 자금유입으로 국내증시는 현재 시장의 40% 가까이 점유해온 외국인의 영향력을 줄이는 동시에 수급을 뒷받침할 지원군을 확보, 유동성 장세에 대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정부의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특히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증시의 안전판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에 대한 의결권도 늘어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했을 때 ‘백기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칼 아이칸과 KT&G의 경영권 분쟁 당시 국민연금이 KT&G 손을 들어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체투자 확대 부분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해 말 불과 1조원가량에 그친 대체투자금액도 2012년에는 수십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해외연기금의 경우를 보더라도 사회간접자본(SOC), 부동산으로 대변되는 대체투자는 연기금의 주요 투자대상이기도 했다.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한편 경제성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국민임대주택 등에 대한 부동산 투자 역시 ‘국고채 금리+α’의 꾸준한 수익을 얻으면서 주택보급률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왜곡 및 ‘연기금 사회주의 논란’ 여전=그러나 국민연금 주식투자비중 확대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번 움직이면 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힘을 갖고 있어 주식가격 급등락은 물론 특정종목 거래량 감소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지금도 국민연금이 어느 종목을 샀다는 정보는 개인투자자들의 추격매수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거대연금의 움직임에 따른 시장왜곡은 우려할 만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보유지분이 늘어나면서 ‘연기금 사회주의’로 불리는 특정기업에 대한 의결권 확대와 이로 인한 지배구조 왜곡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국민연금이 막대한 지분으로 특정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경우 안정적인 경영권이 훼손될 수 있다. 아울러 지배주주 간 경영권 다툼이 불거질 때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동아제약 경영권 사태 당시 상당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에 대해 여론이 어떤 선택을 강요할지 상당한 고민을 했었다”며 “KT&G 사태와 달리 국내 개별주주간 분쟁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상당한 고민거리”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