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 날 50돌] 인터넷포털

네티즌 3,000만 돌파…경제 중심축 자리매김


99년 당시 한게임 메인화면.

인터넷 사용인구 3,000만명, 인구 100명당 인터넷 사용 인구 세계 2위. 인터넷 강국 한국을 웅변하는 지표다.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지금 우리에게 인터넷은 생활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국내 인터넷 서비스산업은 지난 99년 364억원에 불과하던 시장이 2003년 3조7,000억원으로 급성장하며 IT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인터넷은 지난 94년 한국통신(현 KT)이 아시아 최초로 상용화한 ‘코넷’을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송속도는 지금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9.6Kbps에 불과했다. 이후 하나로통신, 데이콤, 나우콤 등이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선보이며 정보화 강국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 된 것은 지난 97년. IMF를 거치면서 벤처 열풍과 IT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때맞춰 설립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국내 최초의 무료 e메일 서비스인 ‘한메일’을 선보이며 인터넷 사용인구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후 NHN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업체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의 발전은 가속이 붙었다. 99년에는 ‘다음카페’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냈고 ‘아이러브 스쿨’은 수 많은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다시 만나게 햇다. 이에 힘입어 인터넷 사용인구는 2년만에 10배 늘어난 1,000만명을 기록하며 본격적인 대중화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국내 인터넷 환경은 사용자와 이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외형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이로 인한 바이러스나 해킹, 인터넷 중독의 부작용도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은 인터넷의 영향력이 오프라인의 문화와 정치로 전이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월드컵 당시 인터넷을 통해 시작된 자발적 응원과 촛불시위는 온 국민을 하나로 응집시켰다. 또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넷심’을 잡는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네티즌들이 대선의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며 새로운 파워 집단으로 등장했다. 이후 네이버의 지식검색 서비스 ‘지식in’ 서비스가 본격화 되는 등 검색서비스가 늘어나며 국내 인터넷 업계는 다음의 독주 시대를 접고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이어 지난해에는 ‘싸이월드’등 1인 미디어가 온라인 세상을 휩쓸었다. 특히 이 시기 인터넷 사용인구가 3,000만명을 돌파하면서 내수 시장의 한계를 실감한 다음, NHN. SK커뮤니케이션즈 등은 중국과 일본, 미국등에 제휴나 법인 설립을 통해 해외 진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 업계의 관심은 휴대인터넷의 보급과 요금 종량제등에 쏠리고 있다. 또 유선인터넷에서 시작한 인터넷 서비스가 무선 랜 서비스를 거쳐 모바일 기기에 안착할 지에 대해 통신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밖에 이용요금 종량제 도입을 둘러싼 KT와 기타 업체들, 인터넷 이용자들의 신경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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