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85만명, 청년실업률 8.8%, 아예 구직을 포기해버린 실망실업자 13만명, 한국노동시장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시련이다.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달갑지 않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손님이 한국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면서 표면에 드러난 일자리부족의 문제는 이제 사회적 화두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이런 시급한 일자리만들기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노ㆍ사ㆍ정은 지난 2월8일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당면한 현실에 대한 원인분석과 적절한 대책마련을 위한 장고의 산물로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사회협약에 담긴 내용이 최선의 것인지에 대해서 사회일각에서 비판 아닌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답이 나올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주체는 기업이다. 일자리 만들기의 해답을 기업이 아닌 다른 데서 찾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이며, 일자리창출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바로 기업들이 고용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난해 기업들의 인력부족률이 4년 만에 감소추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이는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나눌 파이가 없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파이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나누는 방법은 파이를 충분히 늘린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이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애기다. 이를 위해서는 과다한 규제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등 투자저해요인의 개선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최근 필자와 만난 어느 기업가는 “고용을 늘리려면 기업투자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투자를 늘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글쎄, 이미 오른 임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지나친 임금인상이 없다는 확신만 있어도 신규투자를 한번 계획해 보겠는데...” 라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대기업근로자의 임금수준은 국민소득이 몇 배나 되는 선진국에 필적한다. 제도적 투자저해요인의 개선과 함께 적어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의 혜택을 입어온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안정 또한 일자리창출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 하겠다. 물론 `고용없는 성장`에 대비한 고용 친화적인 산업의 육성, 인력수급 미스매치 해소방안 마련 등 다소 기술적인 부분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밑그림은 그려졌다. 그 위에 어떤 구체적인 그림들을 그려넣느냐에 따라 그림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명심할 것은 고용정책은 단기간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그 이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업대책에 왕도는 없다.
<김영배 경영자총협회 상근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