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의 무차별적인 달러 흡수가 안정을 찾아가던 이머징마켓을 벼랑으로 내모는 형국.’ 최근 진행되는 이머징마켓의 외환 및 금융시장 불안정은 기축통화인 달러가 한곳으로 몰리면서 나타난 ‘달러 빈혈증’이다. 특히 금융권 부실자산 정리와 경기부양에 나서는 미국이 재정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대량 매각하기 시작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유럽 각국으로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 우선순위에 밀려 고스란히 손발이 묶여 있다. 실제로 최근 신흥국가에서 해외 금융시장을 통해 달러조달에 성공한 사례를 찾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국한돼 있을 정도다. 국내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올들어 잠시 (한국기업들에) 열리는 듯하던 글로벌 본드시장이 한달 전부터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며 “일부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곳도 금리 스프레드를 너무 높게 매기려 들어 과도한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동유럽발 금융위기 가능성은 ‘달러 쏠림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투명한 투자대상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해도 일단 ‘리스크 회피’를 최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글로벌 자본의 속성. 이 같은 정황에서 체코ㆍ폴란드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는 이달 들어 위험수위로 급속히 높아져 국가 부도 가능성을 염려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동유럽에서 출발한 위기 재발 가능성이 글로벌 시장 유동성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 지역에서 발생한 불안요인이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대출과 투자라는 복잡한 연결고리를 거쳐 각국에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견실한 경제구조를 보였던 아일랜드가 전세계 ‘2차 신용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일랜드의 CDS는 3.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LA타임스는 지난 16일 “(최근 CDS가 급등한) 아일랜드가 파산하게 된다면 유럽중앙은행(ECB)에 문제를 불러오고 이는 전세계 신용위기를 재차 점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아일랜드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인데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6개국의 일원이라며 아일랜드 파산은 지난해말 아이슬란드의 파산이 유럽에 미쳤던 영향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금융시장 내에서도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즐기는 헤지펀드를 기피하고 우량 금융기관에 주목하는 자금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설립자인 존 메리웨더가 설립한 JWM파트너스와 케네스 그리피스가 이끄는 시타델 인베스트먼트그룹 등 유명 펀드들이 최근 들어 증권사들로부터 자금조달을 받기 힘들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특히 지난해 -42%의 수익률을 기록한 JWM파트너스의 ‘렐러티브 밸류 오퍼튜너티 펀드’는 신규자금 확보는 고사하고 기존 대출자금에 대한 상환 압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타델 인베스트먼트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 시타델의 대표적인 펀드상품에서 지난해 54%의 손실을 기록하자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대출을 줄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 헤지펀드가 대거 신흥국 시장에 투자했던 주식이나 채권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자국 금융기관들의 상환압력에 직면한 헤지펀드들이 신흥시장물을 청산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주가 하락은 물론 외환시장에서의 급격한 환율상승이 초래될 수 있다. 16일(현지시간) 빚어진 러시아ㆍ헝가리ㆍ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의 외환시장 급변동은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단적인 사례다. 곽병열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유로화 약세 기조가 본격화된 지난해 12월부터 신용위기의 재현 가능성은 금융시장에 잠재돼왔다”면서 “위험회피 자산의 달러화 전환과 이에 따른 달러화 강세 기조는 글로벌 유동성의 심각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